귀에 전화기를 댄다.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송신음이 애닯다. 침을 삼키며 딱딱한 전화기를 더욱 압착한다. 여름날 물놀이 후 귀에 대는 조약돌은 얼마나 따뜻했던가. 마음에 찬 습기까지 게워내게끔.
왜 이리 받지 않아? 여러 정황을 떠올린다. 전화기 쪽으로 달려오는 중일까. 다른 전화를 받느라고, 아니면 일에 열중하여 못받는걸까. 혹은 진동모드인 채 가방 안에 두어 모르는건지. 액정 창에 뜬 전화번호를 곱새기며 누군지 알아채려는건가.
엉뚱한 생각으로 가지를 치는 중에 덜컥 상대가 나오면, '아차' 하며 더듬거린다. 이래서는 낭패다. 무심코 받은 전화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던 생각 등을 뭉턱 잘라 버리고는, 상대가 던지는 말에 허겁지겁 대응해야 하다니. 무미건조한 응대를 잇다 보면 통화 자체가 후회막급이다. 필경은 약속을 하고 나중 억지 구속감까지 가져서는. 전화질이란게 알고 보면 난폭하여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정작 기다릴 때에는 기척이 없다가 날아든 숱한 전갈이 저녁 무렵 나보다 먼저 집에 들어서 있는 난입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당연히 전화하기를 망설인다. 왠만하면 대면하여 눈을 맞추며 말을 나누면 오죽 좋은가. 그러다보니 상대가 선수를 쳐서 하는 전화 내용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신호를 주려고 애를 쓴다.
금을 긋고 구분하여 받아들이기를 결정하는 좋지 않은 습성 때문에라도 사람들과 속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건 아닌지. 이미 자자한 원성을 귀가 닳게 듣는다.
종일 궁금하지도 않나요? 그렇게 연락이 없어도 걱정되지 않나요? 숫제 모르는 사람이면 기대나 않지.
소통 없던 친구와 불현듯 조우하기도 한다. 연유를 캐면 결국 내 연락이 뜸한데 기인하지만, 모르는 중에 큰병 치레를 한 창백한 낯빛이 티를 내기도 한다. 계면쩍게 변명한다.
남의 일인듯 여겼더니 앓아 눕기도 하는구나. 아무쪼록 탈이 없어야 할 텐데.
바라볼 적마다 한뼘씩 키를 키운 해바라기가 울타리 너머 삐죽 고개를 내민다. 담벼락에 쳐놓은 줄을 잡고 조심스레 기어오르던 나팔꽃이 이른 아침부터 깨어나 와글거리는 여름. 섬유질이 억세진 진초록이 지겨울 참이다. 베란다에서 힐끗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너희들의 세상. 한때이겠지만 마음 놓고 자라거라, 하다가는 퍼뜩 깨난다. 어느덧 나도 성한 시기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 쯤에 서 있지 않은가. 지금에사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가지만, 혹여 어둠 내릴 때 여기를 찾아 들지 못하면 어떡할까 싶어 괜히 뒤돌아 본다. 바닥에 던져 둔 평상복을 챙기고, 펼쳐 둔 책갈피들을 덮어 치워둔다. 흔적으로나마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잡스러움을 떠올리게 만들지 말아야지.
집 안에서 뛰면 혼이 났다. 오뉴월 메뚜기처럼 날뛸 수야 없지. 휩쓸리며 일을 그르칠까 염려한 때문일 것이다. 한자한자 글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어가는 것보다 영상에 몰입하며 입체적으로 접근하여 속도감을 즐기는 게 주류이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 만남에 대한 순서를 가다듬기보다는 폴더를 열어 단발마적인 신호를 보내고 확인하며 정작 본인은 가 있지 않은 채로 상대는 도착해 있기를 바란다.
스크랩해 둔 오래 된 신문기사나 게시글을 낡은 공책에 꼼꼼하게 붙인 철을 보낸 사람이 전화를 했다.
예전 제 글을 정리해 둔 걸 보냈습니다만 받아 보셨는지요? 기회 되면 읽어봐 주시겠습니까?
한때의 재주를 일깨워 주지시키고 일감이라도 얻었으면 하는 가냘픈 압력이다.
조만간 한번 나오십시오. 점심이라도 같이 하시지요.
잠잠한 며칠이 지난 다음 연락을 받았다. 수첩 빽빽한 난에서 내 이름을 발견한 영애가 울음을 억누르며 낮으막하게 운을 뗀다.
오늘 운명하셨기에 알려드립니다.
소통 없이 살기란 어려운 일. 허나 난무하는 번잡함에서 벗어나고픈 마음도 어쩔 수 없다. 원하던 않건 간에 말은 만들어지고 형체를 빚어 메시지로 날아간다. 이를 잡아챈 이는 되새기는 중에 또다른 형상을 빚고는 갸웃거린다. 노래가 노래로 들리지 않고 울음이 되어 가슴을 긁어대는 일도 헛헛하다. 우리를 둘러싼 관계들이 왜 이리 답답할까. 뛰쳐나가고 싶어 두리번거린다. 열린 틈은 과연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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