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가려움이란

*garden 2009. 9. 14. 16:05




늦더위에 잦아들던 매미소리가 다시 커지고, 살이의 소명을 다한 암수 고추잠자리의 느긋한 짝짓기비행이 눈에 띈다. 아열대화로 점차 잰걸음한다느니 따위의 소식에 내둘리지 않더라도 아직은 반팔옷이 어울리는 즈음. 무심코 팔 등 맨살을 긁는다. 자극이 가면 잠복해 있던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인자가 한꺼번에 일깨워지는지. 손톱질에 파동이 지듯 번지는 가려움으로 그 주변까지 꾹꾹 눌러본다. 틀림없이 통증과 가려움은 다를 텐데 말야. 긁어서 상기된 살피죽으로 또다른 통증이 알러지 반응처럼 자리를 잡는다. 나중에 보니 가려운 부위가 단단하게 부풀어 올라 있다.
이게 언제 상처더라? 아하, 여름 끝머리에 남쪽 바닷가에 나섰다가 밤 모기에게 물어 뜯겼지. 같이 간 일행들이 얘기를 나누다 말고 여기저기서 철썩이느라 여념이 없었지. 정작 본론은 꺼내지도 못하고선 한바탕 웃었던가. 아무렇지 않다며 지나쳤는데 나중에야 나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게 한달여나 지난 지금에도 가려울 만큼 두드러진 옹이로 배어 있다니. 짜증스레 긁는다. 지지부진하던 올 초여름 날씨로 실종이라던 모기가 철 지난 지금도 활개를 친다. 그래도 해변가에서 맞닥뜨린 그 녀석들이 더 지독했다. 거침없이 옷을 뚫고 피를 빨아댈 정도로. 금방 가라앉겠지, 했던 게 천만의 말씀. 생체방어기능이 약화된걸까. 이렇게도 오래도록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 정도로.


창을 열었다.
냉난방 때문에 늘 가로막을 쳐두어야 하는 풍경. 소통이라도 하려면 눈길을 줘야 한다. 어느 때 들이차던 봄의 화사함, 여름의 싱그러움을 지나 지금은 잦아들고 갈무리해야 할 때. 오랜만에 바람이 활개치며 드나든다. 입자 고운 오후 햇빛도 쓸어다 두고, 푸르다 못해 시린 하늘에다가 솜자루를 풀어놓기도 한다. 바람결에 풀잎 같은 소리가 엷게 스며들어 귀를 기울인다. 뒤쪽 연립 사는 조무래기가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는지, 하모니카 소리가 메마르게 붕붕댄다.


가냘픈 소리의 줄기를 따라 눈길을 들면 예전의 마포나루. 서해에서 거슬러 온 뱃길이 성을 쫓아나온 육로 발길과 맞닿던 자리. 조무래기들이 어울려선 오후 나절 흙먼지를 일으키며 맨발로 달려가 미역질하던 자리가 지금은 산지사방 이어진 길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콘크리트로 쌓아올린 강가에는 주로 과거를 떠올리고 싶은 이들만 서 있었다. 걸망에서 주섬주섬 들어내는 아득한 시간들. 길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떠내려갔다. 강을 따라 흐르는 해. 지는 해를 보며 사람들은 과거와 과거가 어떻게 이어져 왔던가를 떠올렸다. 가려움은 역성 기제인가. 원하지 않는 강화와 분화를 이루어낸다. 손톱을 세워 긁을 때마다 살비듬처럼 지난 기억이 일어났고 새 날은 통증으로 자리잡았다. 외로운 사람들이 늑대처럼 킁킁대며 물 냄새를 맡았다. 드러내지 못하는 아프디 아픈 상처를 숨기고서.












Songs Without Words Op.67 No.2 * Humming V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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