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길에서

*garden 2009. 9. 18. 17:00



철들기 전부터 동경하던 도시로 너도나도 쫓아나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스로를 제어하고 갈무리할 수 있어야지. 어쩔 수 없이 고향이라는 이름의 자리에는 죄다 연세 든 분들만 남았다. 노인천국이라기엔 격이 맞지 않지만.
붙여 먹고 살 땅이라도 있다면 매이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떠나지 못하는 건 왜일까. 인연이라든지 지연 등의 질긴 연줄이 주저리주저리 얽혀 있던가.

여행을 모의한다. 친구들과 반도를 대각으로 가로질러서는 선유도에서 사나흘 지내기로 했다. 더위를 식힐 여름 밤 해변가와 나직하게 철썩일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베어 문 듯한 울음, 비릿한 냄새와 장작을 돋운 재오고 지핀 캠프화이어, 기타 소리와 근사한 화음으로 아우르는 낭만과 젊음의 향연을 떠올리며 전율에 떤다. 누구는 무엇을 가져오고 등의 역할 분담도 마쳐 다짐을 놓고 지도를 꺼내 더듬어 갈 행로를 숙지한다.
집에서 눈치만 보며 며칠을 허비했다. 운을 떼기가 어려워서. 나중에는 가릴 계제가 아니어서 결연한 심정으로 어머니 앞에 앉았다. 여행을 가겠다고 말씀 드리는데, 누구하고 어디를 어떻게 가는지 꼬치꼬치 캐물으신다. 조심스레 꺼내고 늘어 놓는데, 두어 밤을 자고 와야 한다는 대목에서 콱 막힌다. 아니나 다를까, 선유도가 어디 붙어 있는 곳인지는 모르지만, 그야말로 무척 먼 곳에 가서 자고 와야 한다는 데 이르러서는 손사래로 말을 끊는다. 당신은 하룻밤도 안된다며 길길이 뛴다. 처음에는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회유를 하다가 나중에는 기껏 키웠더니 어미 말이라고는 거지 발싸개만큼도 여기지 않는다며 머리를 싸매고는 누워 버리시니. 약속이야 이미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두고 훌쩍 가 버릴 수는 없어 난처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나중 바리바리 싸든 친구들이 집에 왔다가는 당신 눈앞에 어른거리지도 못하고 떠나버렸다. 나는 우쭐거리며 가는 친구들 뒷모습만을 배웅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 슬하에서 여행이나 그 밖의 일을 빌미로 나선 적이 없다. 나중에 훨씬 더 좋은 데를 실컷 다닐 수 있을텐데 꼭 지금 가야 하느냐는데 토를 달 수 있어야지. 늘 읊조리시는 그 나중에, 동생들과 돈을 마련한 적이 있다. 어느 사이에 연로해진 당신들이 안쓰럽다. 봉투를 내민다. 어디든 한번 다녀 오시지요, 하고선. 가도 되나? 새삼스레 되물으시는 당신. 여기도, 저기도 가고 싶다더니 이런 일, 저런 일을 핑게대며 짐을 꾸리지 못했다. 정녕 당신이 떠나기를 싫어했을까. 천만에. 가끔 다녀오는 친구분들과의 여행 사진을 보면, 나란히 서서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으시는 모습이 눈에 아프게 들어왔다.


간절기에 도반들과 서해 마량포에 간 적이 있다. 차를 대고 트래킹으로 십여 킬로미터를 들어갔다 나온다. 해풍을 맞으며 선 매끈한 소사나무 군락과 갯벌과 포구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뱃길을 밝히는 빨강, 하양 등대를 돌아보고 일행과 사진도 찍는다. 출출하여 포구에 면한 식당에 들렀다. 때를 넘겼을 뿐 아니라 제철도 아니어서 북적이지도 않건만 서비스가 엉망이다. 너댓 번을 소리 쳐야 마지 못해 고개를 디미는 아주머니. 던져 둔 수저가 모자라 부르고 앞접시를 달라고 부르고 물컵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 부른다. 주문한 음식은 한나절을 넘겨서야 나오니. 짜증난 일행 중 한 사람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도 그럴수록 상대는 무덤덤하다. 음식이라도 괜찮았으면 다행이련만, 입 안이 서걱거리는 게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오면서 투덜댄다. 그런데 계산을 하던 일행이 은근히 놀란다. 우라질, 왜 이렇게 비싸? 무심코 따지다가 금액이 맞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일이만 원도 아니고 십여만 원이나 틀릴 정도여서. 따지자 사과하기에 앞서 잘못 계산했구먼, 한마디로 끝나 버린다. 그 당연한 투가 더욱 속을 뒤집었다.


여행이 화두이다. 때만 되면 길에 넘쳐나는 인파들.
태백쪽으로 갔다가 그냥 올 수가 없다. 이름난 시장쪽 한우육소간에 간다. 우리가 앉으려는 자리는 안된다며 문간방으로 내치더니, 기본 음식만 올려 두고선 코빼기도 안보인다. 몇 번 꽥꽥거렸더니 왔다갔다 하던 아주머니는 아예 보이지 않고 주인장이 직접 심부름을 한다. 애시당초 극진한 서비스를 기대한 게 무리였을까. 달리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돈푼이나 마련하겠다고 나선 시골 어른들이 닳고 닳은 사람들의 온갖 시중을 어찌 처리할 것인가. 최소한 위생적이고 친절하기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에 그쪽 사람들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기야 하지만 답은 요원하다. 가볍게 즐기고 적당히 바가지를 당하고 올 수밖에. 이러고서도 길에 나서려는 내게 집에선 눈을 흘긴다. 글쎄, 소일거리가 이만한 게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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