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오직 봄을 찾아

*garden 2010. 3. 16. 18:22




승강기 문이 열리자 드러나는 해끔한 얼굴. 선녀처럼 미끄러져 들어오며 목례를 날린다. 잘 익은 과일같은 아랫층 여자. 냉큼 들어와선 뒤에서 돌이 되었는지. 뒤통수가 간질거린다. 달콤하고 세련된 냄새가 폴폴 나 뒤엉킨다. 무심코 인사를 받았더라면 무안할 뻔했다. 사방 가지를 벋는 생각. 이웃도 예전만한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걸 염탐꾼처럼 힐끔거려야 한다. 골프채로 채운 무거운 가방을 끌었어도 어찌 가쁜 숨소리도 없을까. 설마 승강기가 멈춰버린 건 아니겠지. 점등하는 층 불빛을 확인하는 순간 방이 꺼진다. 신음을 삼키며 휘청하는 발 끝에 힘을 주었다. 가끔 마주치는 남편은 단정했다. 며칠 전인가. 밝은 회색 터틀넥에 털실로 짠 캡을 씌운 페어웨이우드만을 들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오던 모습을 떠올린다. 식탁에 앉아 골프 얘기를 주로 할까. 여자는 작은 입을 오물거릴 것이다. 벋어오르다 말고 그치는 스윙 얘기를 꺼내면 침착하게 입을 떼겠지. 프로강사보다는 샵에 가서 코치를 받아보라는 조언을 할 것이다.
만나면 골프 얘기만 꺼내는 친구도 있다. 전국에 산재한 사백여 개나 되는 골프장, 늘어놓는 말을 정리하면 들르지 않은 곳이 드물다. 그 중 하나를 아지트로 정해 놓고 시간만 나면 찾는다. 가히 국민스포츠로 자리잡는 데 지대한 공을 들인 이들. 푸르른 초원 Grass, 맑은 공기 Oxygen, 밝은 햇빛 Light, 경쾌한 활동 Foot의 두문자를 따 이름 지었다는 골프. 매치플레이나 스트로크플레이 방식이 있다는 정도나 아홉 홀이나 열여덟 홀 경기에서 홀 하나에 공을 집어넣을 때까지 타수가 적어야 한다는 기본지식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더구나 몇해 전부터 알게 모르게 견비통을 안아 그 통증만으로도 고개를 저어 멀리 할 수밖에. 골프에서 규정타석대로 치면 파(Par)라고 한다. 한 타를 줄이면 버디(Burdy), 두 타를 줄이면 이글(Eagle), 특별히 Short Hall 에서 한 타에 홀인하면 홀인원, Long Hall 에선 이글이라고 한다. 감히 이루어지기 힘든, 가슴 뛰는 말이지만 네 홀짜리를 한 타에 넣는다든지, 다섯 홀짜리를 두 타에 넣으면 이야말로 뉴스에 다룰만하다. 우선 경이로운 비거리가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알바트로스라 부르는데, 이름 그대로 비행거리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슴새목 조류인 알바트로스는 신천옹이라 하며, 날 수 있는 새 중에서 가장 크다. 대륙에서 대륙으로 갈 수 있는 새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의 남섬 더니든에 가면 알바트로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맘때면 짝을 짓는다. 특이한 점은 한 번 짝을 지으면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는다. 순한 습성과 사람을 보고서도 피하지 않아 깃털을 모으는 이들에게 남획당하기도 했다. 땅에서는 걸을 때 뒤뚱거려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날개를 펴고 오르면 우아한 비행이 멋스럽다. 바람을 타고 즐겨 이동한다. 날개짓 없이 몸을 띄워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한다는 설이 있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아무려면 어떨까. 그렇게 훌쩍 대양을 건너 또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가다 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겨울. 방향도 없이 사방을 휘젓는 바람으로 어지럽다. 봄이 길을 잃었을까. 영화 아바타에서 제이크가 토루크막토를 부리듯 알바트로스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이를 대장삼아 봄을 포획하러 떠났다. 황사에 잠기거나 비에 젖어 어른거리지만 길은 맹숭맹숭하게 이어진다. 성급하게 나선 이들이 목도리를 끌어올리거나 밭은기침을 내뱉기도 한다. 날개짓으로 산을 돌고 강을 넘나들어도 마찬가지. 상승기류를 피해 몸을 낮추었다가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과 함께 날기도 한다. 남녘에 닿기도 전에 저으기 실망한다. 그래도 몰라. 파릇한 싹을 토해낸 밭을 보면 어딘가 옹송거린 봄을 찾을 수 있을까나. 일사천리로 내달려 자취를 놓친 건 아닐까. 사방을 견지하면서 우스갯소리로 긴장을 누그러뜨리기도 한다. 드디어 언덕받이를 홀로 지키던, 홍매가 줄줄이 엮인 가지를 찾아냈다. 눈을 크게 떴다. 여기가 바라던 곳인가. 섬이어서 애틋한 것은 옛말. 섬이거나 섬이 아닌 구분도 의미 없다. 섬에서는 섬을 볼 수 없다더니. 물결에 시달리며 거북등처럼 둥둥 뜬 섬들. 어떤 섬은 누에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멀어져간다.
물결 이랑에 멀미를 하는, 동백만이 오롯이 있다는 섬은 고요했다. 꽃은 기다리지 않았다. 저희들끼리 수런거리다가 덜컥 떨어져 딩굴었다. 봄은 감히 형체도 드러내지 않았다. 봄을 찾기 위해 우리가 길을 나서지 않았다는 것조차 알고 있다는 듯이. 단지 일상성을 박찰, 자신 없는 핑겟거리로 삼았음도 알고 있다며 능청스레 시치미를 떼는 건 아닌가.













When Will I See You Again * John Ado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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