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봄날 고양이

*garden 2010. 3. 29. 11:24




다복솔한 산길에 섰다. 정겨움이 누이 치마처럼 부풀고 펼쳐진다. 길 가던 바람과 벗하며 호젓한 산행을 바란다면, 사기막골이나 송추쪽을 들머리로 잡는 게 좋다. 우선 그쪽으로 가려면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34-1번 등의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서울과 경기도쪽 시외버스도 교통카드로 연계된다. 뉴스를 보니, 어딘가에는 산 입구까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편리하게 오르내리도록 만들겠다던데 발상이 어찌 그럴까. 휴일 아침 거기로 가려면 최소한 버스 두어 대는 그냥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포털사이트 카페 등을 매개체로 모인 동호회원들로 인산인해이다. 삼십 분마다 한 대씩 움직이는 시외버스를 이용하러 길게 줄을 늘인 사람들. 한 사람이 서있던 자리에 일행이 줄줄 꿰어들어선 나중 열댓 명으로 불어나기도 한다. 오십 줄은 훌쩍 넘긴 남자들이 등산복장으로 앞에서 입담을 즐긴다. 간밤 숙취 탓인지 풀린 눈에 꾀죄죄한 몰골이다. 거기에 말이 중구난방으로 튄다. 간혹 낯 붉힐만한 걸죽한 이야기도 나온다. 못들은 척 상관 말아야지. 헌데 걔중 누군가 줄담배를 피는 통에 자욱한 담배연기가 우리 앞에서 폴폴거린다. 참다 못한 일행이 이를 지적한다. 그뿐이었으면 괜찮을 걸, 담배를 피던 이가 오히려 발끈한다. 말을 꺼낸 쪽은 '사람 많은 데서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걸 자제해야 하지 않느냐'이고, 이에 맞서는 쪽은 '여기서 담배를 못피란 법이 어디 있느냐'인데. 쉽게 말해 '내 담배 내가 피는데 도와 준 게 있느냐'면서 성깔을 드러낸다. 티격태격하여 여차하면 너도나도 나설 태세이다. 자칫 패싸움이 될 판국이니, 끽연자의 친구들이 슬그머니 나무란다.
"거봐, 임마. 한소리 들을 줄 알았다니깐. 예서 담밸 피면 연기가 어디로 가냐?"

승복하는 건 죽기보다 싫다. 못이기는 체 떨어져서도 씩씩대며 악착같이 피는 담배. 일단락되었어도 씁쓰레하다. 사과 한마디면 간단하게 매조지될 것을, 주변 모두 속이 복잡하다. 애초 담배연기에 대해 말을 꺼낸 선배도 찌부둥하긴 마찬가지. 진작 나도 이를 문제삼고 싶었지만 참았다.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해서. 설령 상대는 자기 잘못을 알더라도 이를 시인하거나 행태를 바꾸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격돌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려면 참을성이 필요하다. 허나 참을성이 진정한 덕목인가 하는 부분에서는 선뜻 결론 내리기 어렵다. 언필칭 나도 '안돼, 하지마!' 등의 말을 능사로 내지른다. 일일이 제지당해야 하는 식구들도 불만이다.
"운제 하라고 등 떼민 적이 한번이라도 있슈?"

'아차' 하며 우물쭈물 말을 씹어먹는다. 즉각 행한 일의 결과와 내가 바라는 물리적 충돌 없는 가운데서의 결과를 비교하여 시시콜콜히 설명할 수 있다면 다행인데, 이를 쏘면 되받아 나중에는 변질된 다툼이 이어진다. 일의 선후를 따져 달라지는 상황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싶은 건 내 마음일 뿐, 대개는 아이까지도 비주얼세대답게 감각적으로 즉각 표하고 행동한다.
어릴 적 길에서 자주 벌어지던 난전. 장꾼은 소기의 목적을 위해 노련하게 군중을 이끌어간다. 쟁쟁한 목소리로 사람을 물리거나 내쫓기도 하며 웃음도 머금게 만들었다가 침을 삼키게도 한다. 번잡한 건 질색이다. 거기 휩쓸리기 싫어 멀찍이 돌아다닌다. 음식 앞에서 우리는 곧잘 이성을 잃었다. 그런 때면 꾸중을 들었다. 달려든다고 내 차지일 수는 없는 노릇. 내몫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지금도 나는 얻으려는 것을 쫓아다니기보다 기다리는 행태를 취한다. 심지어는 명색이 회사의 연봉협상에서도 조목조목 따져 요구하기보다 백지위임을 해버린다. 그런 자신이 가끔은 싫다. 그렇다고 뛰어들어 이전투구를 벌이기는 더욱 싫다. 의당 싸워야 할 자리임에도 물러나 있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시비를 건다. '왜 싸우려 하지 않느냐'고. 싸운다고 될 일인가. 그렇게 해서 해결된다면 백번천번 싸우고말고. 나만 참는 게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생각을 품고 참을 것이다. 차차 '나'에서부터 시작한 참음이 근간이 되어 '우리'가 될 때가 있지 않을까.
근사한 뱃지를 단 사람들이 바야흐로 목청을 높이는 때이다. 이 한번을 놓치면 기회가 요원하다. 봄이라고 정의를 내린 측에 맞서 불손한 일기를 들어 아직은 봄이 아니라고 상대가 일갈한다. 봄이든 말든 다들 상관 않는데, 이 사람들은 죽기살기로 판을 벌이고 드잡이질을 한다.
햇살 완강한 평상에서 배를 깔고 엎드린 고양이 한 마리, 눈을 감거나 하품을 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사랑을 봄날 고양이처럼 담아 둘 수 있다면'









Way of Hearts * Aschera[Whales Of Atlantis]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자리  (0) 2010.04.09
봄날 아침   (0) 2010.04.07
야고를 봤지   (0) 2010.03.25
모두 꽃이다  (0) 2010.03.22
그래도  (0) 2010.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