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곱하기9까지 외워야 하는 구구단. 미국 등 일부 나라에서는 십이단까지 외우게 한다. 인도에서는 십구단을 가르친다고 한다. 구구단에 그치지 않고 십구단까지 확장시켜 외우는 것이 좋은가. 참고로 말하자면, 인도 학생이 다른 나라 학생보다 수학을 잘한다는 보고는 없다. 십구단을 외우면 암산이 능숙해진다고는 하지만 암산법 교육을 바탕으로 수학 기초를 다지지는 않는다.
교육열이라면 세계 최고인 우리 학부모들. 느닷없이 십구단 열풍이 몰아쳐 아이들을 들볶는다. 책받침에 있던 구구단처럼 십구단표를 만들어 달라는 빗발치는 요구에 직면했다. 표가 있어야만 외울 수 있다는 발상도 우습다. 표를 제공하면 이에 그치지 않고 재미있게 따라 읽을 수 있는 운율도 제공하는 것이 마땅하다. 따지다 보면 번거로운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궁극적인 의문에 닿아 유별나다며 고개를 저었더니, 금방 핀잔에 직면한다.
"요구하면 주면 되지, 왜 안주려고 하나요?"
"단언하기야 이르지만 바람에 편승해서 만들 수야 없지요."
"그것 참 이상합니다. 바람을 달가워 해야지, 피해 다니시면 어떻게 장사를 합니까?"
상업적이지 못한 내게 면박만 주어진다. 결과를 이야기하면 십구단표에 대한 아우성은 채 일년을 넘기지 않았다. 십구단 표와 표의 앞뒷장을 맞물리게 하는 자석 장치까지 고안해냈다. 누군가는 이 자석 때문에 신용카드 마그네틱선이 지워졌다는 항의를 해댄다. 주변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잠자는 십구단표 샘플을 보면 씁쓸하다.
며칠 전 서너 살 되는 아이가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십구단을 척척 외워댄다. 어린아이보다 못한 어른이 있어, 십구단은 커녕 구구단도 더듬거려 비아냥을 받으며 웃음으로 얼버무리기도 한다.
법정 스님이 그 동안 풀어 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저서에 대한 절판을 요구했다.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이해 관계부터 따져야 한다. 책을 내지 않으려다 보니, 정가 팔천 원짜리 '무소유'가 옥션에서 경매가 이십일억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물론 일부 네티즌의 장난 짓거리로 여긴 옥션측에서 경매를 중지시켰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김수환 추기경은 1968년에서 1976년 사이에 법정 스님이 발표한 산문 스물다섯편을 모아 놓은 '무소유'를, 스님이 아무리 가지지 말라고 강조한들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반농담삼아 말씀하시기도 했다. 너도나도 '무소유'를 가지겠다고 야단법석이니. 자칫 나는 '무소유'를 읽지 않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혹시나 누가 던질지 모르는 멸시가 두렵다. 과연 '무소유'를 읽지 않고서는 물질만능인 이 사회에서 도태되어야만 하는지.
'왜 사는 일에 열중하려면 호들갑을 떨어야만 할까.'
할인마트에 들른다. 심심치 않게 들이키는 막걸리라도 사 들고 가야지. 북적이는 사람들 너머 눈길로 더듬는다. 냉장식품과 음료가 있는 저기쯤 있을거야. 매장에 들어서는데 상품을 소개하는 사람의 다급한 소리가 난다. 오늘 들어온 싱싱한 밭딸기를 반값에 떨이하겠다는. 나와 엇갈려 필요한 물건으로 채운 카트를 끈 아주머니들이 저돌적으로 달려온다. 마주하여 럭비 선수마냥 이를 헤집는 내 몸짓이 짜증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결국 막걸리가 있을만한 진열대로 향하던 걸음을 포기했다. 대신 아주머니들과 함께 몰려가 몇 개 남지 않은 딸기에 부랴부랴 달려든다. 그나마 집어들었기에 망정이지. 나중에 와선 허탈한 표정을 짓는 할아버지 앞에서 괜히 의기양양하다. 물컹하며 아삭한 딸기 붉은 향을 음미하자 '꿀꺽' 침이 삼켜진다.
Album 'Gentle Spirit' * Bernward Ko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