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대체 누구를 닮을까. 나를 쏙 빼 판박이라는 딸애, 다른 것보다 유난한 고집만 보인다. 그리고 보면 닮는다는 건 외양에만 기인하는 게 아닌가 보다. 제 엄마와 잘 통해 붙어 다니다가도 한나절을 넘기지 못하니. 두고 보지 못해 꺾겠다고 덤비면 외려 더 공고해지는 고집. 방금 전에도 사달이 나 제 엄마와 한판 벌인다. 결국 사납게 방문 닫는 소리와 함께 쫓겨난 아내 손길이 거칠다. 주방 개숫대에서 그릇이 와르르대다가는 팅글팅글 던져지기도 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억울하다. 책상 앞에서 입을 삐죽일거고, 아내는 아내대로 분기를 참지 못한다.
내탓인가, 이십 년도 훨씬 전에는 전혀 저러지 않았는데. 하찮은 우스개에도 입을 가리고는 웃음이 지워질 때까지 고개를 못들던 사람. 조금씩 대가 억세지면서 어느 때부터는 거침없다. 시장통에서도 싸우고 백화점 점원과도 싸워 이기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낯모르는 사람과 붙기도 한다. 싸움이야말로 하면 할수록 넌덜머리 날 터인데 그게 그렇지 않다. 세상 누구보다 강해져 장소 불문하고 맞선 누구라도 만만하게만 대하게 되니, 인제는 하늘이 무너져도 끄떡없을 태세다. 아이들이 장식장 모서리를 붙잡고 걸음마를 뗄 무렵, 통장 이체 내역을 따지던 서슬 퍼런 모습이 생각난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갑작스런 태도에 나까지 당황스럽다. 별 수 없이 일선에서 물러나 수입도 없는 시골 어른들께 당연한 도리라고 매월 부치던 얼마 되지 않는 돈이 있었다. 그걸 두고 볼 리 없다. 이런저런 핑게로 입을 막고는 싹둑 끊던 기억이 씁쓰레하다. 영문도 모르는 어른은, 다니러 간 김에 며느리 모르게 찔러 주던 용돈이 더 서러웠을게다. 그렇게 될 거라고 진작 알았지만 받아 들이려니 견디기 힘들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낼 것 없이 당당하던 기세를 알게 모르게 접어야 하는 세월이라면. 혀를 찬들 소용 있어야지.
한번은 옆에서 듣거나 말거나 넉두리를 하신다. 바다 구경이나 원없이 했으면 좋겠다고, 툭.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시간 내서 한번 가십시다."
대꾸라고 쉽게 내뱉고서는 실행을 못했다. 아니 살다 보면 어느 때 가게 되겠지, 하다가는 영영 기회를 잃어 버리고 말았다. 식구들이 졸라대면 열일 제쳐두고 시끌벅쩍하여 아무리 번잡한 곳이라도 달려갔을 것을. 하찮은 바닷가에라도 왜 모시고 간 기억이 없을까. 오늘 문득 눈에 드는 바다. 저 바다로 향하는 언덕길이 언제부터 막혀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