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나무 아래서

*garden 2010. 11. 5. 14:09




배웅하는 당신 모습을 안보려고 눈 질끈 감고 걷는다. 대신 어머니가 이고 있던 우람한 나무가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뒤따르는 걸 느꼈다. 돌아보지 않을려다가, 당신 손이 끊임없이 나부끼길래 슬쩍 눈을 떴다. 이 눈치 없는 눈물이라니. 바람이 세차지며 이파리란 이파리가 다 일어나 초록 실핏줄이 지워지도록 떨어대는 걸 본다.


어머니를 배웅할 적에 그때처럼 당신 닮은 커다란 나무를 우러러봤다. 꽃 피기 전이어도 향기라니, 온 세상이 혼곤한데.
할아버지 손에 딸려온 철부지가 노란버스에 오르며 코를 킁킁댄다. 버스가 부릉부릉 목청을 돋운다. 엄마에게 끌려 학교 가던 아이가 들린 신주머니를 까불다가 두리번거렸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연인이 야속하다고 종종걸음치는 소녀 뒤를 뒤쫓아간 선머슴아, 겨우 따라 잡았다. 나무 아래서 말다툼 대신에 입을 삐죽거리다가는 웃었다. 눈물이 찔끔거릴 만큼. 이른 새벽부터 온 동네를 훑어 모은 폐휴지를 너절하게 인 리어카가 선다. 손잡이에서 벗어나도 리어카를 끌던 때처럼 허리가 꺾인 할머니가 자글자글한 입을 벌려 담배 한대 빼물었다. 세상살이 별 건가. 시름이 몽글몽글 올라 나뭇가지에 동동 얹힌다. 구여운 우리 손주 줄 과자 한 봉다리라도 사 가야지, 아암.
비천한 곳에서 남루하게 자랐어도 당당하기만 한 나무. 겨우 고개 내민 꽃자락, 이틀을 못버티고 맨땅에 고개 쳐박으며 지워졌어도 내색 없는 나무 아래를, 일희일비하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안색을 바꾸는 나를, 나무는 새겼을까. 향은 꽃 아닌 나무의 삶 자체에 배어 있어, 여름가을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바람 불어 까칠한 어느 때, 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등걸을 잡고 울었다.
어머니, 당신 세상은 어떠한가요?














Steve Raiman, Dreams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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