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 만한 덤프트럭이 모래를 부리고 사라졌다. 마른 먼지가 뭉클뭉클 일었다. 모래 안쪽을 헤치면 물기가 있어 손장난 하기에 알맞다. 모래산이 서너 개 만들어진 공터에 아이들이 틈만 나면 몰려가 뒹굴었다. 언제부터인가 인부들이 짝지어 작업한다. 모래를 채로 쳐 고르고 적당량의 시멘트와 섞어 블록벽돌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틀에서 찍어낸 블록은 가지런히 하여 햇볕에 말린 다음 한쪽에 쌓았다. 벽돌 열은 날마다 길게 늘어나고 키는 높아졌다. 블록벽돌로 세운 성에서 동네 조무래기들이 종일 숨바꼭질이나 미로놀이를 일삼았다.
우리 집 우물은 물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한겨울에도 두레박으로 퍼올린 속깊은물은 김이 서린 가운데 추운 아침 그냥 세수를 해도 푸근했다. 반대로 여름에는 뼛속이 얼얼할 정도로 차 수박이라도 사 오면 푸욱 담가 식혀 먹곤 했다. 동네에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마을 외곽 채소를 심어 가꾸던 텃밭마다 칸을 지어 블록벽돌로 담을 쌓는 순간 사람들은 눈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언성이 높아지며 살이가 팍팍해졌다. 이와 함께 우리 우물물은 순식간에 변질되었다. 지각 깊은 암반에서 퍼올려야 했던, 지상으로 오르는 돌 단에서 간혹 여린 달빛마저 미끄러뜨리던 짙은 초록 이끼를 지우며 우물 수위가 순식간에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어느덧 흙탕인 채 지렁이가 나오기도 하고 악취가 나 견딜 수 없다. 짐작할 수 없던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 답답하다.
겨울이 끝나기 전 때아닌 봄비가 종일 내렸다. 사실 메마른 공기가 지겨웠다. 걸핏하면 너도나도 뻔한 콧구멍을 후볐다. 건조함이 지워지자 후각이 돌아온다. 오랜만에 자자한 눅진함으로 까닭 없이 모난 그간의 심통이 누그러뜨려진다. 우산도 없어 처마 선을 따라 와 책가방을 던져 놓는 순간 어머니가 불렀다. 온방 가득 바느질거리를 늘어놓은 당신은 우선 말로 나를 꽁꽁 묶은 다음 부엌으로 내몰았다. 이미 우물 가득 유입된 허드렛물. 우물 덮개를 열면 어느 순간부터 기포가 부글부글 솟았다. 우물 수면이 마당 높이만큼 올라온 것까지 알았는데, 비가 오면 부엌 아궁이에서도 물이 새나왔다. 연탄불을 피울 수 없다. 눅눅함이 냉기와 섞여 감돈다. 식구들은 오한을 떨치기 어려웠다. 할 수 없이 방안을 내어 곡괭이로 부엌 한쪽에 아궁이보다 더 깊은 구덩이를 팠다. 거기서 물이 콸콸 솟았다. 쪼그리고 앉아 국자로 팔이 떨어져나갈 만큼 물을 퍼내 갖다 버린다. 부슬부슬한 비가 지겹기만 했다.
그러한 비가 얼마만인가. 젖은 채 걸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스름 속에서도 추적이는 비가 차츰 신물이 난다. 아득한 날의 저녁이 덜컥 떠올라 까닭없이 서성였다. 가난하고 초라해 웃을 수도 없었는데, 그래도 원하기만 하면 소망이 저절로 이루어지던 꿈같은 시절은 이미 끝나버린 것 같으니.
Phil Coulter, Song For M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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