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숲에서

*garden 2012. 5. 3. 16:57




저녁 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가다말고 옷을 꺼내 입은 엄마가 빙빙 돌았다. 어떻게 하면 보라색 고운 빛깔의 옷을 잘 입을 수 있을까, 궁리하는데 쉽지 않다. 내가 어리버리할 때 슬쩍 다가온 여자친구는, 하얀 천으로 세상을 덮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꺼내놓는 바람에 기겁했다. 마침 우리 곁을 지나는 키큰 여자가 걸친 붉은 양장의 요염한 뒤태에 눈길을 꽂다가는 어질어질하다는 핑게로 벽을 짚었다.
친구 녀석들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줄줄 늘어둔다. 사랑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돈을 쫓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녀석도 있어 함께 밤을 새우기도 한다. 때로는 이름을 드날리고 싶어 난전을 기웃거리기도 하였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여겨지던 소용돌이도 차츰 잠잠해졌다. 비로소 아무렇지 않다.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있던 악착같은 겨울. 어두운 구석에 도사린 냉기마저 걷어내자 숲은 온화하게 되었다. 중력을 무시하고 키만 키우는 나무가 저희들끼리 수런댄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어디 없는가. 마지못해 떠밀려 온 건 아닌가. 기웃거려도 보이지 않는 건 습관처럼 빗장을 걸어 둔 탓이다. 적요 뿐인 숲. 그래도 알 수 있다. 숨은 물길 하나 찾아서는 오순도순 발 적신 채 저마다 생기를 끌어올리는 아름드리 나무들. 가지 맨 끝부터 싹을 틔우는 장엄한 질서가 아름답다. 때로는 어긋난 몸짓마저 갸륵한, 그래서 나무 사이 틈을 비집어 늘인 팔에 힘을 주고서는, 새순을 틔울 때마다 몽글몽글 일어나는 어진 바람들이 초록 빛깔로 휘돌아다녀도 싫증나지 않는, 이곳 숲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Stefan Pintev, Flying To The Rain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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