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봄날 시련

*garden 2012. 5. 24. 17:14





인터넷이 활성화되며 달려든 건 서핑도 게임도 아닌 바둑이었다. 통바둑판을 억지로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돌이 좋으니 나쁘다느니 따질 것 없이, 알맞은 상대와 때를 가리지 않고 두게 되었으니 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하는 건 뻔한 일. 그렇게 바둑을 좋아하는 상대와 넷 상에서 만나 날이면 날마다 시끌벅쩍했다. 짠 냄새 배인 속초에 살거나 메마른 울산에 거주하는 이도, 땅끝 목포에서 접속하는 이도 한날 한시에 거뜬히 수담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가. 누가 바둑을 잘 두더라 하는 얘기가 전해지면 득달같이 그 방으로 달려가 관전하며 줄을 섰다. 과연 행마가 괜찮구나 싶은 참에, 우쭐한 상대가 호언장담을 한다. 자기는 아무렇게나 두는 바둑을 경멸한다고 했다. 소위 명국만을 추구한다면서. 가당찮은 얘기지만 그런 정신이야 좋다. 바둑은 상대적이어서 원하는 대로 둘 수야 없다. 그러다보니 수가 엉성하게 꼬이는 날에는 두면 둘수록 자멸하는 때도 있다. 그런 때도 이 사람 떠벌림은 그치지 않았다. 바둑을 두면서도 대화창에 올라오는 온갖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뻔뻔함을 감추지 않아 이에 맞장구 치는 이들로 난리법석이었다. 관심 있는 이가 간혹 비꼬듯 바둑에나 전념하라고 타일러도 먹히지 않았다. 어찌 생각하면 경박하지만 밉지 않고 기질이 있어 단위가 2단밖에 되지 않아도 대국이 있는 날이면 사람이 들끓었다. 허긴 서봉수가 명인위에 올랐을 때도 2단이었지 않은가.

명국만을 두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 사내처럼 나도 아무렇게나 글을 쓰지 말아야지 하고 작정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이 아닌 독특한 소재만으로 글감을 삼으려고 했더니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다. 모자란 생각으로는, 일어나는 일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어서 덮어 버린다. 훌쩍 떠나서는 낯선 곳에서 진종일 헤매이거나, 어느 날 미모의 여자가 얽힌 사건에 뛰어들어 거대한 조직에 쫓기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서사적인 이야기를 꾸미거나 요즘 한창인 판타지, 아니면 '미저리'처럼 상황을 기이하게 꼬아 이를 옮겨 써야만 하는지. 반문하다가 평상적인 게 사실은 평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데에 생각이 마쳤다. 괜한 핑게로 글을 쓰지 못하는 게으른 자신을 한탄해야지. 평상적이지 않은 걸 평상적이라 여기고, 평상적인 걸 평상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맹한 판단이 문제이지 않을까. 그 동안 회사나 집에서 상시 맞닥뜨리는 문제에 골몰하는 바람에 정작 사태를 인지 못하여 상황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둔해진 건 아닐까.
봄날 고르지 못한 일기에 사방이 기침소리이다. 허긴 일교차가 10도 이상인 날이 계속되고 있으니. 올해에는 그 흔한 봄날 황사바람도 불어오지 않았다. 사무실 동료들에게 건강관리 잘하라며 당부하고 돌아서는 참에 감기몸살을 앓았다. '이깟걸로?' 싶어 병원에도 안가고 버티는데, 묵직한 무엇엔가 눌려서는 가물가물한 게 죽을 맛이다. 와중에도 하던 운동은 안걸르겠다고 쫓아가서 한 시간 이상 뛰고는 씻고 체중계에 올라서면 이,삼 킬로그램씩 몸무게가 뭉텅뭉텅 빠져 있는 데에야. 욱죄기만해서 탈이 난걸까. 쉬는 날 없이 바깥으로 나돌았다. 연식 오래된 자동차처럼 한밤이면 기침을 컹컹대고서도 치환시키지 못하는 습관. 경쟁으로 일관하여 가만히 있으면 견디지 못하고 야기되는 불안감. 한번 불안해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불안함도 받아들이고 달래야지. 지나친 걱정이나 쓸데없는 기우는 지울 것. 마음을 쾌적하게 운용하는 것도 나를 위한 일이다.
이라크전 귀향 군인들 중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세가 없는 그룹을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주목했다. 조사 결과 긍정적 정서를 지니고, 가족관계가 원만하며 건전한 자기인식이 확고한 보편적인 생활을 바탕으로 한 이들에게는 시련도 신선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축적될 뿐 병이 될 수 없었다. 격의를 치고 핑게를 대며 시간을 끄는 건 나답지 못한 일, 숙제처럼 글을 해치워야지.















Section IV, Falling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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