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고 몰입하는 건 삶이 무미건조하고 고달프기 때문이지 않을까. 곧잘 각본 없는 드라마에 비유되기도 하는 스포츠 경기야말로 우리 인생살이보다 더 극적인 순간이 곳곳에서 불거져 나온다. 고대 이탈리아는 도시국가여서 허구한 날 싸우기 일쑤였는데, 그 영향으로 축구경기를 예전 전쟁처럼 치른다고 했다. '축구' 하면 우리도 어느 해의 유쾌한 유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축구의 변방이라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고, 그 참에 4강에까지 올랐으니 그 우쭐거림이야 대단했다. 사실 유월이면, 전쟁에 대한 참담한 기억이나 힘든 농사일라든지, 마악 시작되는 습한 장마와 더운 여름이 주는 갖가지 짜증 뿐이었는데. 그해 여름은 비도 그리 심하지 않아 진작 잔치를 벌일만한 여건이 마련되었는지도 모른다. 피를 말리던 마감도, 편찮으신 부모님에 대한 염려도, 산재한 집안일이나 갈등도, 매일 챙기고 좇아도 겨우 알아듣던 아이들에 대한 가르침도 온통 미뤄두고,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자기가 만든 아름다운 여인상 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져, 종내에는 조각상을 아내로 맞게 해달라고 빌어 소원을 이룬 것처럼, 나날이 꿈과 기적이 이루어지던 과정과 성과에 대한 환희로 우리 모두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만 빼고 열리는 월드컵이라는 '유로2012'가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서 잠을 설치며 밤을 새우는 광팬은 아니지만 새벽이면 일어나 경기결과부터 챙기면서 일면 그네들이 부럽기도 하고,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위안처럼 선수들 동작 하나하나에 열정적으로 감응하는 모습에 감동 받기도 했다.
뒷이야기이지만 숱한 선수가 '유로2012'를 기점으로 명멸했다.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던 네덜란드는 선수들 간의 불협화음으로 조별리그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경기 외에도 '파넨카 킥'이라든지 '인종차별'이라든지 스페인의 '제로톱 전술' 등이 화제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이탈리아의 마리오 발로텔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경기중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막장행동을 보이는가 하면 동료들과 쌈박질을 일삼고, 경기가 없을 때도 온갖 기행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선수. 언론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스물한살밖에 안된 그를 선뜻 발탁한 이탈리아의 프란델리 감독도 놀랍기만 하다. 그 발로텔리가 전세계인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확실하게 일을 냈다. 대회 초반에는 삐걱이며 빌빌거리던 팀이 차츰 힘을 내는 것은 유명선수들을 보유한 강팀의 전매특허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별로 이목을 끌지 못하던 이탈리아야말로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보라는 듯이 토너먼트전의 강자답게 거침없이 올라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발로텔리는 4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일약 두 골을 넣어 악동에서 순식간에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실로 미운오리새끼가 백조가 되듯. 통렬한 두 골째에 관중석을 훑던 카메라가 독일 여성을 문득 잡았다. 독일팀이 만회골을 넣기만을 학수고대하던 그 여성의 눈에 고인 눈물이 방울져 뺨으로 투욱 흘러내리는 모습은 실로 뭉클했다. 무엇이 우리 안에 있어 때로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발로텔리 원샷원킬, 경고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웃통을 벗어젖히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Michele Mclaughlin, A Tale Of Cour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