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둥글다는 것

*garden 2012. 10. 30. 02:23





옆으로 누웠다. 설마 가학적 취미가 있는 건 아니겠지. 다리를 구부려라. 무릎을 가슴에 대라. 주문에 따라 표현 연기자처럼 애를 쓴다. 간호사는 가급적 내 몸을 둥글게 만들려고 애를 썼다. 아아, 몸을 유연하게 하는 체조라도 익혀 둘걸. 머리를 숙여 무릎에 맞닿게 하고 양팔로 접은 다리를 깍지껴 잡았다. 몸으로 알파벳 낱자 형태를 하나하나 만든 아이들 사진을 어디서 보았더라.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원 둘레를 쓰다듬는 손길이 있다. 하반신만 마취한다고 했다. 척추 어림이 뜨끔하다. 궁금한 것도 순간, 큰 얼음 덩어리를 얹은 듯 다리가 묵직해졌다. 감각이 사라지며 분주한 손길이 느껴진다.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 발작을 일으킬 뻔했다. 초록가운의 순환간호사가 머리맡을 돌아갔다. 누워서 보니 흑백이 분명한 선한 눈에 큰 가슴이 돋보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레싱을 하는지 말랑말랑한 가슴이 다리에 얹혀 춤을 춘다. 달그락거리거나 테이프를 찢는 소리도 들리고. 천장에서 무영등이 빙글빙글 돌아 상처 부위를 비춘다. 키 큰 원장은 수술 중에도 입을 떼지 않았다. 수족처럼 일사정연하게 움직이는 보조 손과 수술도구를 저리 잘 갖추려면 어떤 덕목이 필요할까. 눈을 감고 있기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두리번거리기도 무안한 시간. 내가 못보는 곳을 드릴로 뚫는다든지 붙이고 고정시키는 작업이 그치지 않았다.

조롱조롱한 꽃 같은 얼굴들. 식구들이 몰려왔다. 떠들썩하게 들어와서는 모두 웃음을 지운다.
'죽고 사는 병이 아닌데 왜들 그래.'
창으로 비치는 파란 하늘이 부쩍 시리다. 목소리를 키웠다. 빈손으로 왔냐며 짐짓 조카를 채근한다. 뒤늦게 안부를 묻거나 격려하며 들고 온 것이 머리맡에 놓인다. 보름달 같은 노릇한 치즈케익도 있다. 방금 구운 듯 보는 것만으로도 달콤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빵이 둥글다는 건 여럿이 나눠 먹기 위한 모양인 듯하다.
'아예 지금 먹어 치우지.'
아이가 웃음을 머금으며 말린다.
'나중에 맛있게 드세요.'
둥근 모양은 푸근하다. 자신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이타적인 배려가 깃든 꼴이다. 추석 무렵까지 화단 구석에 딩군 늦수박처럼 정수로 채워져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오늘이 한가위이니, 저녁에는 아마도 치즈케익 같은 보름달이 뜰 게다. 어린 시절에 가난한 입맛을 다시며 쳐다보던 것처럼 사람들은 허기진 소원을 매달아 올릴 것이다. 수많은 소원이 달에 실려 떠돈다. 예컨대 별을 따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늘에 별을 붙이려는 사람도 있다. 더도 덜도 아닌 만큼의 사정을 헤아려 모두에게 원만한 타협을 본 다음 이루어질 건가. 상관없다. 소원을 드러내고 풀어 놓음으로써 성취에 관계없이 다들 만족스럽다. 비로소 달빛 같은 웃음이 꽉 들이찬다.















Ralf Bach, New Moon Wintry & Starry Cl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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