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깨는 일이 잦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가려움이야말로 괴롭다. 깁스 안쪽이 가려우면 잠이 달아나는 건 물론 수반된 답답함이 중압감을 불러 숨이 막혔다. 어릴 적 나쁜 꿈을 꾸며 눌린 가위도 이보다 나아. 누워 견딜 일이 아니다. 목발을 짚고 뒤뚱거리며 나가 책이나 티브이, 컴퓨터 게임에라도 몰두하여 자각증을 지워야 했다. 한밤중에도 올빼미처럼, 바둑을 두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는 이들은 수두룩했다. 돌로 길을 만들고 벽을 쌓아 집을 낸다. 어떡하든지 상대가 집을 짓지 못하게 훼방 놓는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며칠씩 버티며 머릿속에서 나름대로 얼마나 영토를 넓혔던가. 항생제를 투여하거나 혈압을 재러 들르는 간호사는 내 땅을 마구 밟고 다녔다. 굴신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말이 아니다. 뉴욕 양키즈의 주장 데릭 지터가 나와 같은 왼쪽 발목 골절로 시즌 아웃되었다고 한다. 진작 뼈를 다친 이들이 경험담을 늘어 놓는다. 하루만에 깁스를 풀었다거나 아흐레를 못넘겼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나을테지만 그 동안이 문제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에워싼 딱딱한 석고붕대에 공황장애가 일 정도이니. 아, 이런 때 나를 달랠 기도나 주문은 없을까.
의도적으로 회사를 빠진 일이 없다. 본의 아닌 수술 때문이라지만 며칠씩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정황도 자세하게 알리지 않았다. 와중에도 차량을 운행할 수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아침 안개 자욱한 강변북로 출근길엔 줄을 선 차로 질린다. 곳곳이 병목이어서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출근시각이 일정하게 아홉시라면 아홉시 전에 이 많은 차나 사람들은 모두 길에서 사라져야 할텐데 말야. 저 먼저 가겠다며 차선을 바꾸고 끼어들기를 예사로 하는 차가 많다. 염치가 없어. 투덜거리다가는 저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고민한다.
까탈스럽게 굴며 내 집만 넓히려 한다. 상대를 인정하여 공존하는 게 싫다. 깁스한 다리 안쪽 가려움을 어쩌지 못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깁스를 제거해 버리면 간단하지만 대신 치유가 더디겠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이 문제이지 않을까. 요는 이물질인 깁스 자체를 늘상 마음에 두고 있다. 가려움을 참다 죽을 일은 없다. 가려움도 내 몸의 반응이니 수긍해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 영사기를 거꾸로 돌리듯 사건을 더듬었다. 그 시각에 내가 거기 없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그 자리를 비켜갔더라면, 그것도 아니면 아예 산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하며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벌어진 일이니 지금에서야 어쩔 수 없다. 다른 쪽을 택했더라도 또 다른 일로 발목을 잡혔을지 모르는 일.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일로 액땜을 해 버렸다. 순순히 받자.
융통성 없는 깁스를 내 몸처럼 여기겠다고 작정한 날은 편안했다. 이 참에 시련도 경고처럼 받아들여야겠지.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가슴에 넓다란 고비사막을 들이고 살았다. 머물러 있는 걸 참지 못하고, 뛰어다니거나 날아오르려고만 했다. 여유 있게 돌아보며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가다 보면 차츰 놓친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Michele Mclaughlin, Love Left Blee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