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울님과 深溪님의 십일월 포스팅인 '문'. 우연히도 같다.
두 분 포스팅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문은 길과 맞닿아 있으며 소통의 첫걸음이다. 공감을 부르는 소통은 곧 세상이며, 진정성 있는 소통과 교감이야말로 우리 사는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다. 천지를 물들이던 단풍이 한순간에 스러졌다. 단풍이 드는 것도 사그라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소통이다. 미국 대통령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는 인기 여가수 레이디 가가와 캐나다 출신의 아이돌 가수 저스틴 비버 등과 함께 트위터 팔로어 수가 가장 많다고 한다. 오바마의 소통은 트위터에 그치지 않고 페이스북이나 마이 스페이스, 유튜브와 이메일, 블로그에서 비디오게임까지 소셜미디어의 도구란 도구는 망라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육성으로도 적극 소통하여 그 범위가 엄청나다고 할밖에.
알 만한 사람이 보낸 메일을 열었더니, 사실은 글로벌소셜네트워킹인 페이스북의 초대메일이었다. 공적인 장소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나를 세워두고는 카톡에 매달려 있다.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촘촘히 엮은 다음 세상을 구하려는 걸까. 배시시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고 휘젓다가는 멀뚱멀뚱한 나를 보며 왜 카톡을 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스마트하지 않은 내가 못마땅한 걸까. 필요성이야 느끼지만 글쎄. 정치의 계절이다. 이맘때면 봇물 터지듯 외치는 소통과 갈구.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following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인기작가가 정치판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조리 있게 글을 잘썼으니 어지러운 나랏일도 거뜬히 구획 정리할 수 있다고 마음먹은 걸까. 아니면 허접스러운 날것들의 해괴한 짓거리를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다는 건가.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정치가도 있다.
걸핏하면 걸려오는 대출권유 전화. 언제 어디서 번호가 새나갔는지 모르지만 하루에 열댓 번 이상 받기도 한다. 돈을 쌓아둔 창고가 백 개 정도는 될 본사에 항의하고 일일이 타박해도 근절은 커녕 심해지기만 했다. 부동산 정보를 일러주겠다는 연세 지긋한 목소리의 아주머니는, 듣지도 않고 끊었다며 다시 전화를 해 꽥꽥거리는데 어떻게 대꾸해야 하나. 어제 스팸편지함에는 차지희, 강라연, 주고또, 최연정, 승부사 등이 보낸 백사십여 통의 메일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소통이란 대체 어디까지인가? 소통은 공통분모나 생각에서 나아가 활동까지 똑같아야 하는가.
나의 소통 반경은 뻔하다. 그 소통의 한자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회사. 아침 출근길, 성산대교에서 양화대교 사이 차선은 어수선하다. 성산대교와 내부순환고속도로를 넘어온 차가 양화대교가 이어진 합정동 로터리로 들어가기 위하여 바깥차선에서 계속 밀고 들어온다. 어설픈 앞차가 머뭇거리며 순식간에 서너 대를 끼워준다. 그렇게 운전하면 안돼, 소리쳐도 들을 리 만무하고. 대신 차 꽁무니에 내 차를 바짝 갖다댄다. 틈을 놓친 또 다른 차가 내 옆에서 기웃거린다. 곁눈질로 보니, 창을 내리고는 애타는 눈길을 보낸다. 모른 척하고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보았다. 야박하게 생각해도 할 수 없다. 끼워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한두 대도 아니고. 차선에 들어오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안쪽 차선으로 넘어가기 위해 재차 끼어들기를 시도한다. 요즘 합정동 주변이 유난히 북적거리던데 그만큼 많은 유동인구가 거기로 향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결국 도로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이 북새통은 그치지 않을 게다. 불편함을 감수하자면 끝이 없다. 이걸 누구에게 얘기해야 할까. 아니 발의한들 귀담아들을 건가. 여기말고도 바꾸어야 할 데가 산적해 있다고 허투루 말할거다. 그러고보면 내 생각마저도 가로와 세로로 벽을 쌓은 규격 속에 맞추어진 건 아닐까. 퇴근길, 서쪽 하늘에 비구름이 장막처럼 드리워져 심상치 않다. 점점 한정적이고 폐쇄적이기까지 한 나의 소통 방법과 형태에 대해 고민해 봐야겠다.
Tim Janis, Ref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