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청색시대

*garden 2012. 11. 25. 22:34




해는 오후 나절 할머니에게 들른 방물장수처럼 서두른다. 해가 마을 입구를 빠져나간 다음 하늘은, 타이탄처럼 받든 동구나무를 불쏘시개로 붉게 타올랐다. 놀이 사그라져도 한참 동안 훤한 서녘과 달리 해가 지난 길을 따라 어두운 보랏빛 너울이 내리며 캄캄해진다. 그게 장엄해서 우리는 뜨문뜨문 말을 이었다. 종일 마당 곳곳을 쑤썩이던 닭을 몰아 두었다. 횃대나 짚단 사이에서 오글거리던 중 고단한 날개짓을 낸다. 힘겨운 울음도 간간이 들린다. 외양간에서 소가 꼬리를 휘둘러 등거죽을 때렸는지 워낭 소리가 원을 그렸다. 여리게, 가끔 별이 반짝이다가 별안간 뒤웅박 쌀을 뒤엎은 듯 한꺼번에 쏟아졌다. 별이 총총하자 순식간에 동생들이 옆에서 와글와글했다. 별을 세다말고 여동생은 파랗고 새초롬한 여우별을 자기 것이라 했다. 이종동생은 석류알처럼 빨간 꽃별을 가졌다. 저마다 보석처럼 빛나는 별을 차지하고서는 절대 내놓지 않을 참이다.
'오빠는 어떤 별을 가질 건데?'
동생들이 물었지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우물우물 말을 삼켰다. 대신 나는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걸린 초록별을 유심히 쳐다봤다. 깜박이는 별은 눈을 비벼 다시 보면 그 자리에 있는데 곧잘 보이지 않았다. 숨바꼭질하듯 별은 숨었다가 나타나기를 되풀이했다.












Fariborz Lachini, Preplexed I Reached The Edge of Autumn. etc






'햇빛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병, 1983 여름  (0) 2012.12.26
사자는 낭비벽 심한 동물이라지   (0) 2012.11.27
웃던 감자  (0) 2012.06.27
여름 저녁답  (0) 2012.06.05
출렁이는 나무  (0) 2012.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