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사자는 낭비벽 심한 동물이라지

*garden 2012. 11. 27. 20:31




요즘엔 사냥감을 놓치는 일이 잦다. 대략 구천 번 이상의 사냥을 치르면서도 실패한 적이 극히 드물었는데 왜 이런가. 우선 쫓아가기가 힘들다. 애써 따라가도 힘에 부쳐 목표물을 포획하지 못한다.

'신은 죽었다'던 니체는 인간정신의 발달을 낙타와 사자, 어린아이의 3단계로 정의했다. 르상티망(원한)이 쌓여 건강하지 못한 낙타의 단계, 혼자 똑똑해 보여도 어리석은 사자의 단계를 지나 마음에 두지 않고 즐기는 궁극의 단계인 어린아이가 된다고 했다.
나는 낙타이기 이전부터 사자이지 않았을까. 초연한 듯 어슬렁거리다가도 먹이를 물면 놓지 않는 기질이나 앞뒤 가리지 않는 용맹함도 못하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회사 동료들에게도, 심지어는 집안 사람들에게도 어리버리한 구석이 있으면 사자후로 쫓는다.
'아빠가 사자인 것처럼 너희들도 사자여야 해!'
'이따위 글을 누가 읽겠습니까? 살아있는 생각을 담아 오세요'
아이들은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동료들은 숨을 죽이고 피해다니며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도전을 물리치는 것 또한 내 일이다. 영역에 낯선 이가 들어오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저치는 끌려다니는 낙타처럼 왜 그래. 저 독불장군 같은 사자는 어디서 온 거야. 걸핏하면 독설을 날려 짓이긴다. 주변을 평정하고 발을 넓혀야지. 그게 우쭐하다. 거센 바람이 마른 풀을 쓸었다. 초원의 풀밭은 전처럼 기름지지 않았다. 많은 동물이 떠났다.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고수하는 사이에 시름시름 나이가 들었다. 인제 목숨을 걸고 하는 사냥을 기피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의문부호를 붙이는 게 싫다. 플랫폼은 전혀 다른 형태로 우리를 압박한다. 고민하기에 앞서 내가 쌓아올린 세상은 어디 있는가. 이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도 아무도 간섭하려 들지 않았다. 조언이나 여타 의견의 수렴 없이 독단을 일삼아서. 삶은 하나의 등걸로 자라지만 앞뒤가 불분명한 수많은 은원이 얽힌 뿌리가 커지고 많아지는 건 분명하다.

사자로 행세하기가 버겁다. 강철로 빚은 듯 날카롭던 이는 빠지고, 발톱도 예전 같지 않다. 바람보다 빠르게 달리던 다리는 탄력이 없다. 몇날 며칠을 풀 죽어 고민한다. 허울을 팽개쳐야 하지 않을까. 막연한 내일에의 불안감으로 잠 못이루는 밤이 이어진다. 일부러 소리내어 옆을 지나는 동료에게 전 같으면 일갈했을 것이다. 반응이 없는 내가 더 이상하겠지. 애매한 눈을 치켜뜬다. 기다렸다는 듯 낭랑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바깥 공기가 너무 맑아요. 햇빛으로 조린 차라도 한잔 드릴까 싶어서요.'
의외이다. 혼자인 듯 동떨어진 게 힘겨운 날이었다. 기꺼운 마음으로 손을 내밀자 씁쓸함보다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벽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제 방에서 나왔다. 베란다에서, 방금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탈탈 털어 널며 노래를 불렀다. 눈치채지 않게 발장단을 맞추는 사이에 청아한 소리가 커졌다. 오래 전에 아빠도 그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별이 반짝이는 밤에. 저마다 하늘을 올려다 보던 동생들과 티없는 초롱한 눈을 떠올렸다. 별은 우리가 안보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혔다. 대추나무 가지에 걸려 있던 초록별이 명멸한다. 이제까지의 내 주위 어둠은 누가 씌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덮어 가린 것이었나. 눈을 크게 뜨자 초록별이 또렷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밤하늘 별보다 더 많은 별이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Taro Iwashiro, Until Dying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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