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남도 두륜 가을

*garden 2016. 11. 14. 18:51




골판지 박스를 세우고 자는 노숙인을 보았다. 누가 눈살 찌푸리든말든 곯아떨어진 그 단잠이 부럽다. 아침이면 노숙인은 달팽이처럼 집을 이고 길 떠나겠지. 집에 들어앉으면 나도 박스 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유래 없이 더웠던 지난 여름. 박스 바깥이 날마다 화탕지옥이어서 징글징글하다. 땡볕을 피해 부랴부랴 쫓아들어간 사무실은 또다른 박스였다. 매일 박스에서 박스로 오가면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자기 속에 틀어박혀 무표정했다. 저들에게 비친 내 표정은 또 어떨까. 횡단보도를 건너 지하로 들어가려는 찰나 바람이 인다. 그야말로 오래 전에 사그라들어서 깜박 잊고 있던 바람. 내앞 처녀의 항아리치마가 풍선처럼 부풀었다. 아아, 더 이상 살고 싶은 의욕 없이 허덕이기만 했는데.....
길 떠날 채비를 하며 그 아침 바람을 떠올렸다. 두륜에서 가을을 만나 문득 중얼거린다.
이제 내게서 떠나도 아무 말하지 않을게.















Ralf Bach, Autumn Le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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