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송광사 가는 길

*garden 2016. 11. 18. 18:53




아일랜드의 유명한 작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우물쭈물 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으로도 유명하다. 허나 살펴보면 이건 오역이다. 'I kno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어서 '오래 버티면 이런 일(죽음)도 있을 줄 알았어' 정도로 했으면 좋을걸.
여기서 오역한 묘비명은 오히려 내게 맞다. 허둥지둥 보낸 세월. 돌아봐도 걸어온 길이 보이지 않는다. 되돌아가기에도 너무 멀리 와 버려서 남은 방법은 하나, 고만고만하게 견디는 수밖에 없다. 바람이 흩어지는 길. 앞으로의 시간이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두륜산을 다녀오는 길이 고역이었다. 장장 열시간 이상을 버스 안에서 버텼으니. 리무진이어서 편할 줄 알았는데, 이도 독(毒)이다. 앞자리 동료가 의자를 한껏 제끼고 누웠다. 내내 앞자리 의자 머리를 가슴께에 두고 왔으니 자칫 공황장애까지 느낄 지경이다. 그렇다고 내 의자까지 뒤로 제끼면 편하지 않을 것이다. 답답해서 중간에 의자를 '툭툭' 쳤는데 용케 알아챈다.
"그렇찮아도 이걸 세우려고 몇 번 애를 썼는데 작동되지 않네요."
말하는 폼을 보니 사실이어서 더 이상 쫓을 수도 없다.
헌데 그렇게 해남을 다녀온 다음 날 다시 순천 조계산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건 예정된 일이 아니었는데 일이 틀어져 잡힌 억지약속이다. 빠지려고 해도 그럴 계제가 안되어 울며 겨자먹기이다. 한편으로는 어떤 일인들 받아들이지 못할까 싶어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밤 늦게 도착해서 부랴부랴 짐과 세탁물을 정리했다. 씻고 잠깐 눈 붙인 다음 어두컴컴한 새벽에 부랴부랴 약속장소로 쫓아나갔다. 어제 이쪽으로 다녀온 티를 낼 수 있어야지. 생판 아닌듯 버스로 달려가 선암사쪽에 내렸다. 송광사 가는 쉬운 길이 있지만 그럴 수야 없다. 장군봉을 오르기로 했는데, 동네 뒷산 쯤으로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다. 884미터짜리 산을 생짜배기로 올라 부작용도 생겼다. 발을 끌다시피하는 일행이 있어 맞추다보니 시간이 지체되었다. 약속시각에 어긋난 건 물론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지경이다. 어찌어찌해서 오후 다섯시경에나 때 놓친 점심을 해치우는데 사람들 얼굴을 보니 실소가 났다. 여행이란 게 늘 만족할 수야 없지만 이거야 말로 해프닝이다. 이 팀과 작정한 산행이 종종 있는데 어떡하나. 인증샷을 찍어주며 정작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일렁이는 단풍처럼 떠도는 사람들로 북새통인 송광사에서 아늑한 정취를 느낄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까닭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너도나도 길이 없다고 한다. 길을 찾으려고 했던가. 그렇다면 틀렸다. 길은 보이지 않을 뿐 어디에나 있다. 공자가 논어 '이인'에서 설파한 조문도 석사가(朝楣 夕死可,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를 되뇌이며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번잡을 떨었다.







Chris Spheeris & George Skaroulis, Field Of 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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