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죽었다. 꽃다운 생이 끝났다. 가버린 사람은 말이 없고, 남은 사람은 애닯다. 그녀 어머니가 오열을 한다. 눈두덩이 부어 제대로 떠지지 않을 만큼. 아이들만 보며 홀로 지나온 세월이 한스럽다. 고양이 울음처럼 떠도는 흐느낌이 질긴 명주실 같다. 생전의 그녀와 북한산을 오르내리던 동료가 나를 잡아끈다.
"몸이 안좋았잖아요. 그렇게라도 건강해지려고 산을 오르내렸는데....."
위안 받을 데가 마땅해야지. 기껏 향하는 데가 북한산 아래 사찰이다. 연말에 도반들이 모였다. 이런저런 얘기로 한해를 마감한다. 자기 전 약속을 한다. 다음 날 백운대에서 새해 일출을 맞이하자고. 이윽고 새벽이 되었다. 산에 오를 채비를 하는데 다들 꿈나라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이 사람 저 사람을 깨우다가 포기하였다. 다행히 연세 지긋한 어른 한 분이 동행하여 정상에 올랐다.
"어라, 두 분이 갔나 보네. 피곤해서 일어날 수가 있어야지."
"그렇게라도 새해 새 아침을 맞으니 얼마나 좋아!"
"헌데 이 바람 소리 좀 들어봐."
북극 중심이 된 듯 천지가 얼음장이다. 골을 오르내리는 바람이 사나운 이리처럼 '으르릉'댄다. 걱정스럽다. 마침내 두 사람이 나타났다. 기다리던 이들이 공치사를 던진다. 상기된 표정이 두 사람의 뿌듯함을 대신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봄날 꽃 피기 전에 어른이 먼저 돌아가시고, 여름이 지나는 중에 회사 여직원도 운명했다.
동료가 눈물을 찍어냈다. 얘기 끝에 지난 겨울이 예사롭지 않았다면서.
"새해 나란히 백운대에 올랐던 두 사람이 그렇게 갈 수 있는지.....!"
주말 아침, 과천 대공원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이다. 전동차가 도착할 때마다 쏟아낸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였다가 사라지곤 했다. 내가 지나는 옆자리에서도 괜시리 떠들썩하다.
"아이구, 살아 있었고만."
"그럼, 여그 안보이는 애들은 다 간 거야?"
말 끝에 웃었다. 그래, 옆에 누군가 있어야 쓸쓸하지 않다. 바람만 활개치는 세상. 한기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때. 언제까지 이렇게 견딜 수 있을까. 아침 햇살에 길게 그림자를 끌며 가는 꾸부정한 어깨가 새삼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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