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조용한 민희씨. 옆에 있어도 없는 듯하다. 서너 번 봐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심하다. 티브이에서 보는 탤런트와 거리가 있는 얼굴이어서인가. 아니, 애초 관심을 두지 않아서일 게다. 본인도 이를 자각한다. 내색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떨어져 껍질 속에 들어 스스로의 존재감을 감추는 데 필요한 대처방법을 알고 있다. 그런 민희씨가 결혼을 했다.
두어 달 뒤 초대를 받아 몰려갔다. 어딘지 닮음꼴의 짝과 손을 잡고 나와서 맞이해 준다. 깍듯한 인사에 존경과 감사함이 물컹 우러난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이 환해졌다. 우울하고 자신감이 없는 듯한 민희씨는 어디 있는가. 어둡고 우중충한 구석은 온데간데 없이 사랑으로 충만하여 눈동자가 초롱초롱한 예쁜 새댁이 해맑게 웃는다.
"헛, 이게 누구요? 눈부신 이 선녀를 데리고 사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아, 마음에 의지할 무언가를 들이면 저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새삼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에 있는 이는 만날 때마다 계룡산 얘기를 꺼낸다.
"계룡산보다 좋은 산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꼭 한번 다녀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여러 번 간곡한 청을 뿌리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어쩌다보니 두어 번 짬을 내 다녀왔다. 마침 아는 이가 있어 군 관할 지대까지 아울러 탐방하는 영광을 누렸다. 답례로 그냥 있을 수 있어야지. 그이들을 북한산으로 초대하여 의상능선에 오른 적 있다. 비교 대상이야 될 수 없지만 계룡산이 제일이라 생각하던 그들 입이 딱 벌어졌다.
사람마다 가슴에 품고 있는 게 제각각이다. 북한산을 내집 안방보다 더 쉽게 드나드는 나도, 얘기가 시작되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산 구석구석 정경을 떠벌인다. 그런 내가 한라산이나 설악산에 가면 말을 닫는다. 산이 주는 중량감이 다르다. 묵직함을 밟고 선 우쭐함도 접어 두어야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산정에서의 칼바람도 좋다. 혹 멀어질 적마다 간절하게 그리며 한달음에 달려오겠다고 다짐한 날이 얼마였던가.
눈 내린 설악을 밟았다. 이게 올해 몇 번째이더라. 만나 이마가 깨지도록 끌어안아 부대끼고 싶은 산. 방이 걸리자 마자 신청했다. 그저 거기 어딘들 좋지 않을 수 있나. 깊은 속살 어디쯤에서라도 잠들면 뿌리 없던 영혼도 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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