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一音

Andre Rieu & Johann Strauss Orchestra, Zorba's Dance

*garden 2018. 8. 12. 02:30




얘기 중에도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아이.
"얘기를 나눌 땐 거기 집중해야지. 뭘하냐?"
"아빠 말씀 중에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는 거에요."
스마트폰에 길이 있다고 믿는 건가. 불시에 다쳤을 때의 처치법, 이가 아프거나 궁금한 것, 물건을 사야 하거나 관람 영화를 선택해야 할 때 등이면 우선 액정화면부터 연다. 아닌 게 아니라, 이게 썩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스스로도 위안을 갖는 모양이다.

살아가면서 생기는 수많은 선택과 갈등. 이에 대한 결과가 경험의 산물이라지만 이게 고스란히 다음에도 적용되지는 않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길찾기를 했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었다. 곧게 이어지거나 에돌아 형태가 모호한 길. 길이 길로 이어지지 않으면 답답했다. 맴돌거나 엉뚱한 곳을 헤매어도 나중 처음 시작했던 길에 선 나를 발견하곤 했다.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길이 도처에 있었다. 잘 못 들어가 엉뚱한 곳으로 접어들면 난감하다. 때로 길이 지겹다. 팽개칠 수도 없는 길을 한탄할 수밖에. 집안 아재 한 분은 걸핏하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쫓아나가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 비보를 들었다. 외딴 산등성이 어디쯤에 쓰러져 있었다나. 만면에 가득한 웃음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재답다고들 말하던 어른들이 혀를 찼다. 그 역마살이 내게도 전해진 걸까. 집에 갇혀 있으면 견딜 수 없다. 조급증이 일어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공중 나는 새가 부럽다. 길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고통스럽더라도 넘어야지.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용기나 어떤 계기이지 않을까. 계기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내가 찾으려는 목표점은 애초 형태가 없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허황한가. 누군가 지나치며 던진, 그냥 가면 길인 것을 왜 정의하고 거기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쓸까.












그리스의 국민 작곡가로 존경 받는 미키스 데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는 1천여 곡이 넘는 민중가요와 민속음악, 영화음악, 정통클래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남기며, 그리스 현대음악의 이정표를 세웠다. 또한, 그리스 군사정권을 향한 저항운동의 선봉에서 투옥과 망명을 거듭하면서도 작곡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특히 대중을 위한 음악에 심혈을 기울였다. 'Zorba' 외에도 'To treno fevgi stis okgo'(기차는 8시에 떠나고), 'Phaedra'(죽어도 좋아), 'Never on Sunday'(일요일은 참으세요)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노래가 많다.

1885년 크레타 섬 이라클레이온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으며, 그리스 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앙리 베르그송에게서 철학을 배웠고 니체에 심취했다. 그리스정교회는 '그리스인 조르바' 외 몇 작품을 금서로 지정했으며, 카잔차키스를 교회에서 파문했다. 1957년 9월 26일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 후 고향에 묻혔다.
Nikos Kazantzakis의 묘비명에는 '나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고 이제 두려움은 없다. 나는 자유다!'라고 새겨져 있다.









Andre Rieu(NED/Violin), Johann Strauss Orchestra, Zorba's 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