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無 愛

*garden 2021. 4. 25. 20:19












천릿길을 한달음에 내달려 네 앞에 앉았다. 숨을 골랐지. 다방 불빛이 왜 이렇게 어둑할까. 조금 여유 있게 왔으면 좋았을걸. 그래도 다행이야. 이렇게라도 볼 수 있다는 게. 낯선 네 새옷이 생경해 눈을 깜박였어. 오랜만에 보는 우리이니 단장하고 나온 걸 당연하게 생각하기로 했지. 얘기 중에 우스개를 곁들이며, 끊어졌던 우리 시간이야 아무렇지 않게 봉합하려고 애썼지. 그럴 수도 있어. 하찮은 얘기를 여기쯤에서 걷고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우리 얼마만일까. 비브라토로 소리 높여 웃으며 분위기를 끌어 올리려고 했어. 헌데 말이야. 걸리는 게 있어. 글쎄, 내가 당연히 여겼던 것처럼 네 마음속에 오로지 나만 있으리라 했는데 말야. 왜 자꾸 다른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거야. 처음 듣는 낯선 이름을 반추하며 잠깐 눈을 감았어. 내 이름이 왜 바뀌어 버린걸까. 어느새 나 대신 그 낯선 이름을 들어 앉힌거야. 실수도 받아들여줘야 내 사랑이 완성되는 것처럼 넘어갔어. 못들은 척하며 우리 좋았던 시간들을 떠올렸어. 얼마나 오랜만에 쫓아왔으면 이름을 혼동할까. 그래서 대범하게 헛웃음까지 지었던 거야. 헌데 그럴수록 흔들리는 네 눈빛이 내게 경고를 보내는 것 같아. 말하기보다 옷 솔기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네 심정을 대변하는걸까. 그러더니 제발 그만 듣고 싶은 그 이름이 립스틱 고운 네 입에서 다시 쫓아나오지 않겠어? 아아, 이제까지처럼 온전하게 지내고,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내 간절한 마음에 순식간에 가는 균열을 봐. 벌떡 일어섰어. 우리가 입가 웃음을 마주할 때 다방 레지가 갖다 놓은 커핏잔이 '덜컥'거리도록. 그 순간 내 인생은 바라고 바라던 가능성을 지워버렸지. 이상하게 태연한 네가 무서워졌어.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나오는 나를 뒤늦게 따라나온 네를 손사래로 쫓았지. 사랑이 허물어내리고 지난 시간이 헛되이 스러지는 소리를 들었지만,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온세상이 끝난다 해도 어쩔 수 없어. 아직은 서투르기만 해 한번도 사랑이라고 정의한 적 없지만 우리 시간이 여기서 끝나도 운명이라면 할 수 없지. 19850430












Szentpeteri Csilla,
Sicil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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