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부재 귀에 전화기를 댄다.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송신음이 애닯다. 침을 삼키며 딱딱한 전화기를 더욱 압착한다. 여름날 물놀이 후 귀에 대는 조약돌은 얼마나 따뜻했던가. 마음에 찬 습기까지 게워내게끔. 왜 이리 받지 않아? 여러 정황을 떠올린다. 전화기 쪽으로 달려오는 중일까. 다른 전화를 받느라고, .. 不平則鳴 2009.08.07
여름속 드럼통에 갇혀 달아오른 여름. 바야흐로 내리막길에서 가속도를 붙이는 참이다. 퉁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닭 벼슬같은 깃을 늘어뜨린 맨드라미가 소리 죽이고 웃는다. 묵정밭에 난무하던 고추잠자리가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려다가는 자발없이 솟아올랐다. 드럼통 안이라도 꿈이야 꾸지 못할.. 햇빛마당 2009.07.28
너는 누구인가 가도가도 그 자리인 것만 같은 능선 자락. 공명의 팔진도에 들어 제자리를 맴도는 건 아닐 터인데, 어디쯤 왔을까. 인제 얼마나 남았을까. 예정한 시간 내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 엮는 갈래가 넝쿨이 되어 무성하다. 헛발을 디뎌 일순 몸의 균형을 잃었다. 전체 도정이나 구간을 굳이 .. 不平則鳴 2009.07.23
시냇가에서 거론하나마나 일 중독이 분명한 아버지는 오란비에도 불구하고 정시에 집을 나선다. 당신이 지면에 이는 뽀얀 물보라에 잠길 때까지 지켜보며, 어머니는 대문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입을 쑥 빼물고. 우울한 비가 쉴새없이 내리고 내려서 마음에 습기를 재운다. 눅눅한 이불이라든지 .. 發憤抒情 2009.07.16
꽃을 피우는 시간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집은 금새 폐가가 되었다. 틈은 벌어지고 지붕이 내려앉는다. 문 손잡이나 경칩이 녹 슬어 안팎 소통을 차단했다. 마른 덤불 수북한 곳을 망촛대가 거침없이 올라 가린다. 해가 짜글짜글해 견딜 수 없는 한낮, 카메라를 들고 헤매던 남녀가 때를 훌쩍 넘기고 식당에 들어섰다. .. 不平則鳴 2009.07.14
살이라는 굴레 마주치면 토라지고 새침하여 흘기거나 뽀로통하고 가녀리며 단정하고 일면 예쁘장하던 여자애들. 어느새 세월이라는 강을 몇 겹이나 넘어서는 부끄러운 게 없다. 가까이 와선 스스름없이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보채지만 은연중 느낄 수 있다. 어느새 투박해진 손마디를. 이마나 눈가 자글자글한 주름.. 不平則鳴 2009.07.06
봉정암 오르는 고개 먹는 일은 중요하다. 또한 즐거워야 한다.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며 웃는 중 한쪽에서는 티브이가 왕왕댄다. 오늘 서울은 수은주가 삽십이도를 훌쩍 넘었다고 한다. 더웠나 보네. 다들 얼핏설핏 듣다가 톤이 높고 빠른 기상캐스터의 말투에서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다른 나라 일처럼 무심할 수밖.. 不平則鳴 2009.07.01
쏟뜨린 국에 데어선 한낮 거리가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멕시코의 어느 마을 같다. 난무하는 백색 태양과 끊어진 인적. 바람도 없이 늘어진 가로수 아래 좌판만 덩그렇다. 토속 목걸이나 장식 걸이 등을 늘어놓은 인디오도 졸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연신 하품을 해댄다. 오묘한 잉카의 소리라는 삼뽀냐Zampon~a라도 연주하면 .. 不平則鳴 2009.06.26
그 섬에서 섬인 채 머물고 싶은 적도 있었지 막막함에 싫증나면 또 다른 섬을 찾지 허나 섬으로 섬에 다가갈 수 없는 우리를 본다 자위의 주문이라도 우물우물 매일 아침 입 안에서 꺼내자 천만 년이고 억만 년이고 견뎌보자고 견뎌보자고 과연 그렇더냐, 적막 속에 앉아 있어 봐라 침잠해 가라앉는 중에 마음 한.. 不平則鳴 2009.06.24
잃어버린 우산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점점이 웅크린 나무 사이로 여름이 자취를 공고히 다진다. 구획된 아스팔트를 따라 장난감처럼 움직이는 자동차들. 오늘은 가로 올망졸망한 우산 행렬이 줄을 잇는다. 휘몰리며 아래쪽으로 빗금질하는 비. 허리를 구부려 키를 줄이던 바람이 요동친다. 들이치는 .. 不平則鳴 2009.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