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사고 초여름 생기로 다가오던 초록. 짙푸름이 갈무리되자 그만 삶이 묵직하다. 오랜만에 들여다 보는 디자인실. 기척을 듣고 쫓아나온 이 과장은 피곤한 모습이다. 요즘 아이가 감기를 달고 있다며 초보엄마답게 발을 동동 구르더니, 부르튼 입술이 가뭄에 갈라진 유월 논밭과 다를 바 없다. .. 不平則鳴 2012.07.18
밤은 등잔불에 비친 그림자는 움직임에 따라 흙벽에 길게 드러눕기도 하고, 거미처럼 거꾸로 매달려 천장 서까래를 거뜬히 넘나들기도 했다. 그게 재미있어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다니며 몸을 뒤틀다가는 결국 혼난다. '야들아, 정신 없따. 지발 좀 가만히 있거래이.' 힐머니는 무명이불 홑청을 .. 發憤抒情 2012.07.12
나무와 사랑하기 피아니시모에서 크레셴도로 변환시키기 그리고는 집요하도록 등짝을 간지럽히는 파릇파릇한 봄날 그 바람에 생애 처음 날개가 돋았다, 훨훨 날아다닐 수 있게 모감주 낮은 가지에 앉았다가 마로니에로 옮겨 등걸에 귀를 대본다 새 계절을 맞고 받아들이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냉골 드리.. 不平則鳴 2012.07.09
여름 열정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고 몰입하는 건 삶이 무미건조하고 고달프기 때문이지 않을까. 곧잘 각본 없는 드라마에 비유되기도 하는 스포츠 경기야말로 우리 인생살이보다 더 극적인 순간이 곳곳에서 불거져 나온다. 고대 이탈리아는 도시국가여서 허구한 날 싸우기 일쑤였는데, 그.. 不平則鳴 2012.07.03
웃던 감자 하늘 아래 땅은 어머니와 다를 바 없었으므로 농사가 곧 천하의 일 가운데 으뜸이다. 사람이 흙과 더불어 살던 시절. 땅에서 나고 자란 농작물로 끼니를 잇는다는 건 귀한 일이어서 소홀히 생각할 수 없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므로 다 모여야 식사를 할 수 있다. 이른 새벽에 쫓아나가 .. 햇빛마당 2012.06.27
유월에 붙여서 유월은 첫사랑 같은 시간. 마음 둔 곳에서 미치도록 헤매거나 걸어야 속이 풀리지 않겠는가. 유월의 설악 수렴동 계곡. 영시암을 지난 지도 한참. 꽤 올라왔다. 길은 이제 용아장성을 끼고 오르는 중이라 가파르기만 하다. 온몸의 땀이란 땀을 다 짜내 불순물이라든지, 덕지덕지 묻힌 세상.. 不平則鳴 2012.06.15
다시 생활을 위하여 '여긴 밀리는 구간도 아닌데, 아침부터 웬 일이지?' 멈칫거리던 차들이 꼬리를 물고 부르릉댄다. 찌는 더위가 맞물려 아예 아스팔트부터 녹일 참이다. 대나무 마디를 깎아 길게 이어 만들던,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 뱀처럼 줄에 균열이 진다. 슬금슬금 차선을 바꾸었더니 저만큼 엉킨 .. 不平則鳴 2012.06.11
여름 저녁답 돌담 아래서 용만 쓰던 나리. 어느 때 진하디 진한 붉은색 꽃을 툭 벙글어 놓았다. 그걸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쪼그려 앉은 이모가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앞치마 자락으로 눈가 물기를 찍어낸다. 하지만 이도 잠시, 부지런한 걸음으로 금방 아무렇지 않게 콧노래를 담고는 텃밭에 나가 저.. 햇빛마당 2012.06.05
초록 꿈 성장한 여인처럼 돌아앉은 숲. 그 초록세상에서 활개 치는 이는 누구인가. 새들은 숨바꼭질을 일삼고 바람은 나뭇잎을 쑤썩였다. 녹색 굴레가 전생의 빛인 것만 같아 무의식중에 찾은 숲. 물과 기름처럼 세상에 섞이지 못해 겉돌던 정신이 비로소 위안을 받는다. 즐거워 터뜨리는 웃음이 .. 不平則鳴 2012.05.31
봄날 시련 인터넷이 활성화되며 달려든 건 서핑도 게임도 아닌 바둑이었다. 통바둑판을 억지로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돌이 좋으니 나쁘다느니 따질 것 없이, 알맞은 상대와 때를 가리지 않고 두게 되었으니 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하는 건 뻔한 일. 그렇게 바둑을 좋아하는 상대와 넷 상에서 만나 날.. 不平則鳴 2012.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