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말 비

*garden 2011. 7. 5. 15:44




비에 갇힌 휴일. 핑게 삼아 매몰되는 일상은 싫다. 억지로라도 쫓아나가야지. 젖은 산과 강이 후줄근하다. 조막만 한 나라라 생각했는데, 물기를 품은 구름이 얼마나 두텁고 넓은지 가도가도 컴컴한 대낮. 차창에 부딛는 빗줄기가 폭포수 같다. 이래서야 코앞 차선인들 분간할 수 있나. 비를 말言이라 여겼다. 말이 내게로 왔다가는 금이 가고 바스러진다. 홍수처럼 뭉친 말의 강이 도처에 길을 만들었다. 말들은 대체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말이 그치지 않아 진저리치는 적도 있다. 말이 말을 낳고 진작 있던 말이 말을 만든다. 말은 별의별 숙주에 기생하여 있다가 불현듯 튀어나왔다. 내 자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화기가 쉴새없이 움찔거렸다. 전화 벨이 끊이질 않아 이제 울리지 않아도 환청에 들기도 한다. 욱죄고 설득하고 회유하며 확인하고 다그치는 목소리들. 언제까지 이런 소동에 놓여 있을건가. 하루쯤은 말을 덮어 죽은 듯 가라앉고 싶건만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가 안타깝다. 돌아보면 뻔한 말을 쏟아낸 내가 왜 이리 싫은가.
옛직장 상사가 찾아왔다. 시내 서점에 볼일이 있어 나왔다가 들렀다면서 내미는 손이 예전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다. 근황에서 신변잡기까지 두루 훑다가 얼마 전 있었던 옛동료들 모임까지 꺼낸다.
오랜만에 만나 다들 반가웠는데, 그날 함께 하셨더라면 재미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오래된 사람들은 서먹서먹함을 빨리 지울 줄 알았다. 웃고 떠들썩한 자리. 누군가 총대를 맨다. 못이기는 체 이끌려서는 이차삼차까지 돌고 날이 저물어서야 들어왔다. 그날을 묻기에 술에 절어 씻지도 못하고 떨어진 전말까지 실토해 버렸다. 그리고 한밤중에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하고 새벽녘까지 끙끙거린 내 처지까지 덧붙인다. 얘기 도중에 싱글거리던 상대가 말한다. 사실은 다른 이에게서 그날 이야기를 들었노라고. 이야기를 전하는 이가 하두 재미있게 말하길래 내게서 다시 확인했다며 손을 비빈다. 씁쓰레하다. 바쁜 시간에 나앉았더니 언변의 비교나 하다니. 처음부터 말을 꺼내려고 작정한 자리도 아니다. 당연히 건성이었다. 맛깔스럽게 밀고당기며 이을 걸 그랬나. 이런 때 내색이나 말아야지. 작정해도 억누르느라 표정이 변한 걸 눈치챈 상대가 일어선다. 이런 걸 보면 속이 얕아 금방 드러내는 나야말로 사회성이 어린아이만도 못하다.


뜸하던 친구들 연락을 최근 몇 통 받았다. 의아스럽기도 하다. 아직도 옛 전화번호를 지닌 탓인가. 인삿말을 예사로 주고받다가는 깨달았다. 끓어 적적함을 즐기겠다고 한 것이 이미 어떤 그리움을 안고 있었던 것이나 아닌지. 연유야 어떻든 깡그리 무시하고서는 내팽개친 시간을 떠올렸다. 쓸데없는 말을 쏟아놓더라도 자주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홀로 각박함을 새기려고 언제부터 이리 애를 썼던가.











Kooz, The Rainy Sea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