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하얀 산, 푸른 날
*garden
2017. 1. 16. 15:58
전갈을 받고 부리나케 일어섰다. 병실에 달려갔을 때 친구는 누워 있었다. 모여 있던 식구들이 목례를 한다. 근심 뿐인 눈초리. 들어서는 기척을 눈치챘을까. 눈자위가 떨리며 힘겹게 뜨는 눈. 다가서려다가 멈칫했다. 나를 보는 동공이 비어있다.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쉰 친구 눈에 눈물이 흐른다. 다들 소리 죽여 오열했다. 수만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순간 친구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미간 주름이 지워지며 얼굴이 해맑아졌다. 가슴이 들먹이도록 부풀었다가 조용해졌다. 알 것 같다. 오랜 병치레로 겪은 인고의 시간. 식구들에 대한 걱정. 이루지 못한 일 들이 하찮은 것이었음을. 죽어도 죽지 않을 수 있음을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오늘이 그렇다. 먼저 간 친구 따라 나도 죽었으면....싶은 날이다. 명징한 푸른 하늘과 면돗날처럼 살을 에이는 바람. 간간이 드러나는 투명한 햇살과 순백의 눈. 웅크려도 웅장함을 감추지 못하는 산악과 그 산 가득한 침묵. 돌출한 바위와 빽빽한 나무들과 기척 없는 동물들.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친구 손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겨울. 예전 군에서 새벽녘 탄약고 뒤 동초를 올라 한 시간 내내 떨었던 잊지 못할 추위를 기억해냈다. 맨살을 내놓으면 금방이라도 동상에 걸릴 듯하다. 겨울왕국인 덕유산에서 딩굴고 부대끼며 힘겨워하고 소리치고 허덕이다가 내려왔지만 은연중 안다. 이제까지의 수많은 겨울 중 오늘 하루만큼 소중한 날이 언제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