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장편서신

*garden 2013. 1. 22. 15:04




얘기야 누차 들었지만 정작 확인할 수 없었지요. 기온이 떨어져 추워졌다고, 눈이 내려 쌓였다는 사실만으로 겨울을 알 수 있어야지요. 그래서 길을 떠납니다. 모름지기 찾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겨울을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냐구요. 그건 알 수 없어요. 다만 마음 한자락을 커튼으로 가린 듯 답답하고 모호한 그 무언가를 걷어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산 넘고 강을 건너 우쭐거리며 달려가는 차량 행렬이 길기도 한 아침입니다. 맨 선두에 서기 위해 숨이 차도록 달린 덕분에 산그늘에 유배된 나무들을 만났습니다. 상고대로 치장했어도 옹색함을 감추지 못한 행색이지만 한편으로 의젓한 자세를 높이 살 만합니다. 참, 불안정한 일기 때문인지 해가 올라도 떠나지 않는 안개에 대해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틀림없이 제자리에 있어야 할 대간을, 산맥을 도무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외려 두리번거리는 내가 우스운지 바람이 너울로 일렁여 눈만 맵군요. 그러다보니 아침 내내 눈꼬리를 적시는 눈물을 닦아내야 했습니다.
한밤중에 깨어선 시계를 보니 오전 한시가 채 되기 전이더군요. 훤한 머리맡 창이 의아해 몇 번이나 눈을 흘깁니다. 그렇게 이삼십분마다 깨고 잠들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용량 초과라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거푸 두어 잔의 커피를 들이킨 다음에야 겨우 머리가 개운해지는 기분입니다. 커피를 머금고 내다보는 차창 밖 강원도의 햇살은 맑습니다. 쉼없이 달려온 햇살 비늘이 유리창에서 부서집니다. 허나 이도 잠깐, 금새 해가 가려져 뿌연 빛살의 자취만 구름 위에 눈부십니다. 염기가 적은 민물까지만 얼음으로 덮인 경포 호수를 보며 미끄러져 내리던 경사면에서 결정했습니다. 맨 먼저 만나는 이곳 겨울을 당신께 드리겠노라고.
바람에 실린 이번 폭설의 냄새를 맡습니다. 겨울이 우리에게는 시련인가요. 나는 오히려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어 있음으로 가벼운, 가라앉아 있어 안온한, 시리도록 알싸한 진한 이 겨울이, 어느 날 벽에 걸어두어 박제된 채 부서지던 마른 꽃잎처럼 고운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함께하지 못하지만 겨울이 겨울다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현실도 묵묵한 가운데 인지하여 아주 나중 그렇게 한 계절을 지났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Praha, Wait For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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