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香萬里 15

오, 새날이여!

바람소리가 어린 아이 울음으로 이어지던 밤. 보호막처럼 이불을 두르고 손을 모았다. 아무 일 없이 새 아침을 보게 해달라고. 예전 그 밤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걸음을 뗀다. 하얀 눈밭 위 길이 흩뜨러지지 않을까 싶어 가끔 뒤돌아보았다. 한나절을 넘게 걸었건만 끝없이 이어지는 길. 그 발자국이 어느 순간 삐뚤빼뚤하다는 사실이 서럽기도 하다. 한 그루터기에서 자라 산지사방으로 벋어간 나무 앞에서 멈추었다. 하늘을 향해 풍성하게 벋은 가지며 물을 찾아 전초병처럼 헤맨 뿌리와 길게 늘어뜨린 또 하나의 자각. 이 몸짓 모두가 삶을 위한 것이었던가. 조금씩 느껴지는 바람소리를 들으려고 귀 기울였다. 나뭇가지에 앉았던 눈이 후드득 떨어진다. 아직도 열리지 않은 내 새 아침은?

墨香萬里 2022.02.05

우리가 바라는 세상

35×135(cm) 광화문 앞에서 웅성이는 사람들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이들이 다르다 밥이 아닌 세에 치어 갈 곳 모르는 나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 새벽 방충망에 달라붙은 매미 한 마리 길을 쓰다듬듯 앞발을 움직이는데 네가 꿈꾸는 세상과 내가 바라는 세상이 점점 멀어지는 건 아닐까 붓을 들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먹물처럼 뿌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Chris Spheeris & George Skaroulis, Field Of Tears

墨香萬里 2020.08.20

길에서

. . . 135×35(cm) 가도가도 혼자뿐인 길에서 후회한다 지금이라면 어떤 사소한 이야기라도 들어줄 수 있는데 말야 수많은 이가 걸었을 이 길을 따라간다고 꼭 목적지가 나타나란 법도 없다 허나 대퇴 후면 슬곡근과 허벅지 코어근육이 뻑적지근해질 때까지 헤매다 보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바람도 서성일거고 갈길 재촉하는 구름도 미련없이 보낼 수 있을 것이며 저녁 숲 위 드문드문 보이는 별 보며 동그랗던 그대 눈망울 같은 꽃길도 나오지 않을까 Giovanni Marradi, Spiritual Journey

墨香萬里 2020.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