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일 급한 전갈이 있는데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아니, 신호가 가는데 계속 통화중이라면? 전화를 하려고 쫓아간 공중전화기 박스를 앞서 차지한 사람이 노닥거리면서 뒤에서 듣기에도 한가한 얘기만 줄줄 늘어놓고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나? 휴대전화를 지금처럼 .. 不平則鳴 2014.06.23
어떻게 통해야 하나 무시로 오는 연락. 데스크 책상으로 가서 받는다. "비가 와요." 비가 온다니. 그래서 어떡하란 말인가. 오늘 밤을 새고 내일 늦은 시각까지 원고를 써나가도 모자랄 판국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작성하고 검토해야 할 문서도 많다.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지칠 때까지 걷다가, 삐걱대는 나무 .. 不平則鳴 2010.10.04
노래하는 숲 해껏 허룩하기는커녕 산만 높다. 아부지는 와 안오노? 너거들 자고도 한사리가 열두 번 왔다갔다 해야 할끼다. 밤은 어찌 그리 까만지. 까무룩 가라앉았다가 먼 산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던 전등이 깜박거렸다. 실눈을 뜨자 눈앞에서 아부지가 한 눈을 .. 햇빛마당 2010.07.02
말의 부재 잎이 꽃을 지우는 중이라 어느새 너저분한 철쭉. 꽃 닮은 할머니가 기역자로 굽은 허리로 땅만 보고 있다. 이가 듬성듬성한 잇몸을 드러내며 입맛을 다시는데. 아암, 모름지기 사람이란 겸손해야제. 등에 하늘을 인 것만도 모자라는지, 끄는 기역자 리어카에 산더미처럼 쌓아 동앗줄로 꽁.. 不平則鳴 2010.05.18
길이 없어도 나는 간다 난데없이 지하철 플랫홈에 날아든 나비 한 마리. 꼬이고 풀어졌다가 오르내리는 궤적을 따라 눈길이 움직인다. 어떤 이는 흥미로워하고 어떤 이는 무심하며 또 다른 이는 아찔하다. 꽃 향기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지하 수십 미터 공동에서의 원행이라니. 무심한 날개짓이 이어진다. .. 不平則鳴 2009.12.10
꽃을 피우는 시간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집은 금새 폐가가 되었다. 틈은 벌어지고 지붕이 내려앉는다. 문 손잡이나 경칩이 녹 슬어 안팎 소통을 차단했다. 마른 덤불 수북한 곳을 망촛대가 거침없이 올라 가린다. 해가 짜글짜글해 견딜 수 없는 한낮, 카메라를 들고 헤매던 남녀가 때를 훌쩍 넘기고 식당에 들어섰다. .. 不平則鳴 2009.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