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지하철 플랫홈에 날아든 나비 한 마리. 꼬이고 풀어졌다가 오르내리는 궤적을 따라 눈길이 움직인다. 어떤 이는 흥미로워하고 어떤 이는 무심하며 또 다른 이는 아찔하다. 꽃 향기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지하 수십 미터 공동에서의 원행이라니. 무심한 날개짓이 이어진다. 나폴거림에 따라 비늘 벗겨지듯 결지며 파동 이는 공기. 나비야말로 막막하다. 전동차가 들어온다는 신호음이 짧고 다급하게 울렸다.
움츠린 어깨 위 고개만 끄덕이며 사람들이 전동차 안으로 들어섰다. 곤한 일과가 널브러진 속, 상한 유부초밥처럼 시큼한 냄새가 난다. 몸이 비둔한 아주머니가 꽉 찬 쇼핑백을 발 아래 소리나게 내리고는 빈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앞에 앉았던 여학생이 딴전을 피며 얼른 손에 든 DMB에 시선을 꽂았다. 황새처럼 가냘픈 두 다리를 어슷하게 가누면서. 손전화에 입을 대고 꿍얼거리던 청년이 한손에 움켜 쥔 신문을 신경질적으로 머리 위 난간에 던져 올렸다. 건너편에 점잖게 앉아 있던 노신사가 얼른 일어섰다. 자리를 찾던 아주머니가 잽싸게 달려갔지만 앉을 수 없었다. 노신사가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어 앉았던 자리에 터억 올려 두었으므로. 소유와 점용의 개념을 무너뜨릴 만한 야유를 찾아내지 못한 아주머니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노신사는 유유자적 신문을 집어서는 자기 자리로 되돌아왔다.
구석기 시대의 도래인가. 쳐박혀서는 간섭없이 홀로 남으려는 사람들.
물떼새처럼 총총거리며 형형색색의 머플러를 두르고 나와 고운 소리로 노래하던 윤희씨. 옆 사람이 이야기할 때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입을 가리고 웃던 은채씨. 초록이 묻어날 것처럼 푸르름 속에서 눈을 반짝이던 풀잎님, 향기로운 민트향님, 싹싹하며 다정하던 늘푸른바람님. 파장인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갈 길을 챙기면 한숨이 절로 난다. 제각각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이미 굳은 표정. 고독하지 않아도 고독할 수밖에 없는 군상들. 칩거한 굴에 들면 나올 기미가 없다. 혹여 궁금해진 식구들이 불러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그들의 방.
의리가 세상을 구제할 거라고 믿는 윗상사. 술자리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쪽저쪽 돌아다니며 독려하다가는 제풀에 쓰러진다.
달리는 총알택시 뒷자리에 웅크리고는 끙끙대자, 굵은 뿔테 안경 아래 다물면 아랫입술이 삐죽한 기사가 점멸등 앞에 설 때마다 뒷자리를 탐색한다. 툭눈이처럼 튀어나온 눈을 보며 과장되게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상처 입은 늑대처럼 주저앉아 점점이 해체되기 전, 상사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나를 발견한다. 아아, 오오...신음인지 감탄인지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나락없이 떨어지는 영혼들.
너도 나도 여리디 여린 날갯죽지를 편다. 무저갱처럼 어둠만이 들이찬 속을 훠어이 저어가기 위해.
Gabriel Prokofiev Winter Bonfire Op 122, Waltz on the 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