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을 시골에서 보내겠다고 내려간 선배에게서 전갈이 왔다. 전원주택을 아담하게 지었다는데. 그 뒤, 다녀가라는 요청이 몇 번 있었건만 차일피일 날만 넘겼다. 마음 먹으면 나설 수 있는 길, 그걸 막는 사연이 주절주절 만리장성이다. 심지어는 근방을 지나치면서도 기껏 전화 한통으로 떼우기 일쑤였다. 이러다가 오해 아닌 오해라도 단단히 하겠는 걸. 마침내 방문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이를 빌미로 역시 적조하던 몇몇 친구를 대동하고 떠났다.
선배 내외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잔치라도 벌이듯 갖가지 음식을 장만하랴. 닭장을 뒤져 실한 녀석 몇 마리를 잡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들어설 때만 해도 여기저기 개 짖는 소리 요란하고, 목청 돋워 흙을 헤집으며 꼬꼬댁거리는 닭의 부산함이 그득하더라만, 장탉이나 암탉 등이 털이 벗겨진 채 상에 오른 다음 뒤란은 말 그대로 적막강산으로 변했다.
새벽녘까지 이어진 술 추렴으로 눈이나 제대로 붙였을까. 이른 아침 깨어선 겨우 몸을 추스른다. 집 뒤 계곡 위 활공장이 있다는데. 무슨 말인가 했더니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차로 계곡길을 타고 올라 거기로 치달았다. 휑한 벼랑을 앞두고 트인 곳에서 바람이 어지럽다. 키큰나무들이 이리저리 허리를 꺾었다. 아득하던 세상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회돌이를 쳐 친근한 강과 둔치를 이용한 손바닥만한 논밭과 마을 사이를 잇는 실금 도로들. 여기와 저긴 엄연히 다른 세상이어도 짐작이 간다. 오순도순 사는 사람들이 보일 정도로. 어느 때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 들머리로 잡았던 지리산 성삼재에서도 이랬지. 남원 방향으로 자욱하게 깔려 있던 운해. 희끗한 사이로 아련하게 떠오르던 불빛과 마음에 차던 비장함. 부대낄 산길에서의 정감들로 누그러뜨려지던 생각.
돌아오는 길은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하다. 일행과 얘기를 나누다 말고 의견이 양분되었다. 시골도 시골 나름. 마음을 붙이고 살 만하다는 축과 그래도 불편함을 감수하긴 어렵다는 축으로.
오지를 그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즐기려는 이들이 주변에도 더러 있다. 주말이면 망설인다. 떠날건가, 남아있을건가로. 눈에 거슬리는 부분에서는 갈등한다. 그대로 둘 것인가, 말 것인가로.
아침 나절 출근길인 강변도로 옹벽에 덕지덕지 붙은 담쟁이. 지난 여름 무성하던 삶이 마른 촉수만으로 흉물스럽게 남았다. 한여름 내 선배네 화단을 환히 채우던 백일홍이나 모란, 접시꽃 등에 구절초나 참당귀까지 오그라든 흔적만으로 남아 있다. 놔두면 금방 폐허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손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은연중에 산이라도 닮겠다고 뒤쪽에서부터 오른 북한산. 마른 잎 다복솔한 숲도 지나고 까칠한 암릉도 밟았다가 백운대 옆 위문으로 해서 동장대를 거쳐 대동문으로 내려오는 긴 산행길. 건강을 위해, 소일 거리를 겸해 쫓아나온 이들. 차츰 길을 메운 등산객들에 섞여서는 한굽이를 돌았다.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백제때부터 축조된 북한산성. 요지여서 삼국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던 장소. 그게 고려시대 피난과 대치의 장소를 거쳐 조선시대 효종대에 이르러 필요성에 따라 수축을 시작하여 숙종대에 거의 축성되었다. 현재 보수, 복원으로 완공되었다하나 볼 적마다 성에 차지 않아 혀를 찬다. 일률적으로 번듯하게 해놓으면 좋다고들 생각하나. 자연을 살리자는 건지, 유적을 만들자는 건지, 아니면 이슈를 내걸고 돈을 쓰게 하자는 건지.
산성을 경계로 그 너머 늬엿거리는 햇빛에 반짝이는 촘촘한 아파트. 구획되고 닫힌 저기야말로 또 다른 성이다. 들어서기도 전에 전해지는 소음. 성 안은 날마다 뚝딱거렸다. 와글거리는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오밀조밀 벌집처럼 구획된 제각각의 터전이 눈에 선하다. 젖과 꿀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한들, 거기 빌붙어 의탁함이 마땅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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