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아침에 잠시

*garden 2009. 12. 23. 11:57




걸음을 떼다말고 멈췄다. 출근중이지만 어차피 시간이야 넉넉하다. 몸에 배인 습관 때문에 서둘렀을 뿐. 굳이 다른 이유를 들자면, 아까부터 뒤를 따라오는 신경질적인 하이힐 소리가 거슬린다. 소리는 바닥에서 콩콩거리다가 급기야 하늘을 요란스레 두드리기도 한다. 눈이 내릴려나. 짐짓 위를 보며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을 빼 내밀었다. 미처 숨지 못한 창백한 하현달이 서녘에 걸려 있었다. 강한 냉기가 맨살에 부딪힌다. 장애물도 없건만 경적을 울리며 차가 지났다. 이맘때면 꼭 새로 깔리는 보도블록. 그 마무리되지 못한 틈새를 헤집으며 비둘기들이 종종거린다. 지난 밤 흥청거린 인파가 흘린 유흥의 쪼가리라도 찾았는지. 봄을 잉태하려는, 꽃눈 봉긋한 겨울목련. 그 굳건한 팔 위에서 재재거리던 참새 무리 중 두어 마리가 잽싸게 내려와 합세했다. 하이힐 소리가 꿋꿋하게 옆을 지난다. 잔뜩 움츠리고 꽁꽁 싼 털목도리 안에서 도톰한 입술만 도발적으로 빨간 처녀가 시침을 뚝 떼고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듯 미끄러진다. 이 시각이면 가끔 마주치던 키 작은 아주머니가 건너편에서 다가온다. 무심한 내 시선을 의식하는지 조바심을 걸음에 내보이다가 불쑥 성호를 가슴에 그으며 지났다. 또 다시 뒤에서 털레털레 쫓아오는 발자국 소리. 초등학교 갓 일학년은 됨직한 아이가 신나게 뛰어갔다. 오늘쯤이면 겨울방학에 접어들지 않을까. 한밤내 떨어졌던 친구를 만날 생각으로 마음이 부풀었는지도 모른다. 곰인형 털모자를 눌러 씌운 조무라기를 앞세우고 허리가 반쯤 꺾인 할머니가 유치원 가방을 메고 왔다. 징징거리는 아이와는 거리를 두려는 듯 애시당초 멋적은 표정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왔다.
가지런한 황금촉수를 품고 영근 동백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낮으막하게 내려앉은 세상. 바쁜 걸음들만 종횡으로 엇갈리는 사이에 옹심이라도 생긴 듯 버티고 있으려니, 어서 오라고 빨리 가자고 채근하는 시간들이 사방에서 난리를 쳤다.













Heaven * Hayley Westen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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