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하늘 한쪽에 선을 긋는 별똥. 저게 깐따삐야 별일까. 아니면 신새벽 누군가의 영혼이 오르는 중인가. 탁자 위에 놓인 사과를 한입 덜컥 잘라먹었다. 해를 품고 달빛을 머금었던 아삭한 맛을 기지개와 함께 썽퉁썽퉁 씹어도 시큼한 잠의 뒷맛을 지우지 못했다. 어둑한 집 앞 도로는 빙판이다. 더듬거리며 걸어 냉기가 뭉쳐 있는 정류소에 가 섰다. 십여 분이나 기다린 빨간색 광역버스는 올라타자말자 굶주린 돼지처럼 달렸다. 고치 안 번데기처럼 웅크린 도시를 횡으로 휘저었다가, 꽝꽝 얼어붙은 겨울 강 위 램프에서 두어 번이나 훼훼 돌아서는 종으로 곧장 달려가 나를 게워낸다. 극기훈련시키듯 빙점 아래로 날마다 떨어지기만 하는 기온은 사나운 호랑이이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몇 블록 걸었더니 냉기가 열 손가락 끝에 매달려서는 놓아 주지 않았다. 북쪽 차고지에서 왔다는 관광버스 기사는 굳은 얼굴로 인사도 받는둥 마는둥. 그나마 익숙한 얼굴들이 버스 통로를 지날 때 지네 발처럼 손을 벋는다. 스치거나 잡아 주며 비로소 오늘 기어올라야 할 아득한 하늘길을 떠올렸다.
공룡이 떼지어 살았다는 땅. 떠나기 싫다며 주저앉아 버려 그 아래 별똥은 나올 수 없다. 미생물로 분해된 거대 육신이 흩어져 내린 지 수억 년. 켜켜로 재인 속을 들쑤시던 바람도 지치면 널브러져 이불더미처럼 꾸깃꾸깃하다. 세찬 비도 내리고, 어두운 곳으로 스며든 물기가 봉긋한 흙을 적시는 사이 동그란 꿈을 깨운 적 있던가. 어느 때 간질간질한 열망으로 어두운 틈새를 뚫고 싹도 터뜨렸겠지. 꽃으로 피고 사그라드는 풀이 더미를 짓고 나무가 모여 숲이 되고 노래 부르며 그림자를 겹치기도 한다. 발돋움한 능선이 산그리메로 서는 곳. 하늘이 내려와 그 경계를 지울 때마다 형상들이 모여 옹송거리고, 별빛을 품어 잉태한 눈꽃이 저마다 반짝이는 풍경은 장엄하며 탄복스럽다.
좌탈입적한 선승처럼 오만한 겨울산. 눈 덮인 오르막을 무도장으로 휘저어대는 광풍을 헤쳐 나아가봐라. 한발한발 떼는 중에 산다는 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밭에서 혁명기념일 러시아군 열병식 때처럼 군화 소리가 요란하다. 뻗뻗하면 넉장거리가 되는 건 시간 문제. 가급적 관절을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 숨이 가빠져 폐가 부풀어 오를 때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땀과 함께 범벅되는 경험은 낯설다. 나뭇가지에 얹힌 얼음 조각이 후두둑 떨어진다. 먹이를 찾지 못한 새가 나목 사이에서 기척을 낸다. 약속이나 한 듯 미끄덩거리는 눈더미를 헤치고 둔덕으로 가로막힌 양지녘에 모였다. 초행인 몇 사람이 조심스레 운을 뗀다.
'이제 얼마나 왔을까요, 아직 멀었나요?'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갈 수 있을까요?'
칼로리가 높은 이동식을 나눠 먹으며 숨을 가라앉히자 왁자지껄하다. 뾰족한 음성도 쫓아나온다.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배가 부르면 오르막을 치기 힘들잖아요.'
'몇몇 사람은 지쳤는데, 차라리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버스는 벌써 산 반대편으로 이동했을 텐데.'
'전화를 하면 되잖아요.'
튀어나온 돌을 발못 밟았는지 발목을 삐끗했는데.
오도가도 못하게 된 난민 형국이다. 말을 쏟아내자 꼬리가 이어져 날 새는 줄 모른다. 속 시원히 결정할 수 없는 질문을 너절하게 흩어 놓고는 서로 눈치를 본다. 울컥 짜증이 인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미 지체를 거듭하여 산행이 얼마나 늘어질지도 모르는 일. 행장을 수습하여 오름길을 치자 하나, 둘 따르더니 덩어리가 움직인다. 낱낱의 꽃이 미워지다가 한데 어우러지자 다시 향기를 뿜었다. 공룡의 등이었던 부분이 움찔거리며 가라앉기도 하고, 반대편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바람이 날을 세워 햇빛을 자른 다음 나뭇가지 곳곳에 널어둔다. 상고대가 나타난다. 겨울산, 그 위까지 쫓아온 호랑이가 제 세상이라는 듯 포효를 그치지 않았다.
Yumeji's Theme(Extended Version) * 花樣年華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