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친구 중 용덕이인가 용선이라는 친구가 있었잖어?"
"그러게. 근방에 살아 자주 왔다갔다 했는데, 이사를 하구선 연락이 두절되었어."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네. 만난다면 술이라도 한잔 주고 싶은데."
고향을 떠난 지 꽤 되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본의 아니게 친구들과 소원하다. 시시포스가 저승에서의 벌로 큰 돌을 가파른 언덕에 굴려 올려야 하듯 시작하는 일상. 먹고 사는 일이 웬만큼 힘들어야지. 오가는 게 드물어진 탓도 있다. 궁여지책으로 고향을 뿌리로 하는 주변 친구들만 만나는 일이 잦다. 어떤 때에는 친구가 끌고 온 친구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이 맞아 동류의식이 생기면 다행이련만.
명절이면 내려가는 일이 전쟁이다. 수단이 대중교통 뿐인데 그게 원활치 못하다. 귀성표 구하는 일이 하늘 별따기만큼 어려워서는 온갖 편법이 난무한다. 이제서야 고백하지만 나야 어렵지 않게 왕복표를 구해 다닐 수 있었다. 여동생이 철도청에 근무해 가능한 일이었는데 절대 떠벌일 수 없다. 말을 꺼내는 순간 여기저기 부탁이 득달같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호의로 제 오빠 정도야 애를 써 주겠지만 그를 빌미로 일터에서 온갖 눈치를 보게 할 수야 없지 않은가.
여느해처럼 설에 내려간다. 차례 등을 마치고 올라올 참이었는데 연락이 왔다. 앞서의 용선이가 왔다가 같이 올라가자는 게 아닌가. 함께 움직일 수야 있지만 워낙 앞뒤 없이 설치는 녀석이라 썩 내키지 않는다.
"어, 간신히 표를 한 장 구했구만. 역에 가면 있을래나."
너스레를 떤다. 녀석이 제꺼덕 말을 잘랐다. 차를 갖고 왔으니 염려말라면서. 아니나 다를까,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집 아래에 도착했다는데. 넉살 좋은 녀석이 굳이 올라와서는 어른들께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는 줄줄 달고 내려간다. 이곳저곳 다니는 장사 때문에 필요했겠지. 다 떨어진 봉고 한 대가 납작 웅크리고 있다. 용선이가 오르고 손짓에 따라 반대편으로 올랐다. 온식구가 보는 가운데 우리는 흑기사처럼 털털거리며 출발했다. 차에 대한 인식이 없는 중 소음이나 매연만은 참을 수 없다. 추워도 가끔 창을 열어 환기를 한다. 제법 자동차가 많아질 참이라 녀석이 운전 솜씨를 뽐내려는지 가속 페달을 마구 밟았다. 옆자리에서 나는 조마조마하다. 헛브레이크를 꾸욱 밟거나 은근히 비명을 낼 정도로. 눈치를 보며 녀석이 빙글거린다.
"겁나제? 이래두 운전대를 잡은 지는 꽤나 된단 말씀, 마음 놓고 있으라구."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내뺀다. 질끈 눈을 감았다. 불완전연소된 찌꺼기가 봉고 안에 쿨럭쿨럭 요동을 쳐 머리 한쪽이 띵하다. 신경을 쓰지 않을 때 말이지. 시계를 보면서 어디쯤인지 따지기 시작하자 좀체 나아가지 않는다. 멀기는 멀다. 휴게소에라도 들렀다 나올 참이면 진이 다 빠진다. 그렇게 대전도 지나 꺾어지며 오르막을 오를 무렵 차가 쿨럭거리기 시작한다. '왜 이러지, 왜 이러지?'를 연발하며 간신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마땅히 연락을 취할 방도도 없다. 녀석이 기다릴 참에 앞서의 휴게소에 내가 다녀오기로 했다. 건너편을 지나는 순찰차가 있어, 위험천만하게 건넜다. 순찰차 경관은 노골적으로 금전을 원했다. '이 차 얻어 타시면 비쌉니다.' 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찔러주고, 가서는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차를 아무 데나 맡길 수도 없다. 견인차로 서울 가까운 곳에 끌고 와야지. 자정을 넘겨서는 수리만 맡기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명절 끝에 인사차 이곳저곳 들를 예정이었는데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 온통 구겨지고 뭉개져 스스로에게 참을 수 없다. 부글부글하던 차에 녀석이 툴툴거린다. 말을 받아 한두 마디 쏘아주다보니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단초를 제공한 녀석이 야속하다. 큰소리로 삿대질을 마구 해댄다. 녀석이 풀이 죽어 뇌까린다.
"난 그래도 친구여서 니하고 같이 올락꼬 했잖냐? 낼 예까지 다시 차를 가지러 와야 하는데 큰일이다, 야."
아차, 싶었지만 사과를 하기엔 진정되지 않았다. 택시를 잡는 곳까지 따라온 녀석을 매정하게 뿌리치고는 등을 돌렸다.
Burning Flame * Linda Gent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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