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호랭이가 버틴 고갯길

*garden 2010. 2. 2. 13:57




겨우 한 장 넘긴 달력. 오메가'Ω' 모양으로 불끈 솟은 일출 사진이 드높은 산정, 순백의 눈밭으로 바뀌었다. 숨가쁘게 지난 달을 생각하다가 화들짝 놀란다. 뭐가 조급해선 그리 서둘렀을까.
연말을 지나며 이저 사람이 날린 메일 중 반짝 눈이 가는 데가 있다. 그냥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고, 얼마 전에 근방을 지나면서 또 생각났고, 사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기엔 무심함이 크다....라고 변명 아닌 변명 끝에 마음을 늘 평지에 두라던 맺음당부를 억지로 떠올리지 않더라도, 앞뒤 가리지 않고 퍼덕댄 시간이 안타까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미 출발점이야 기억마저 가뭇하고 결승점이 가까운 참인데, 아직도 붙박힌 곳 없이 그냥 떠돌고 싶다니. 건강도 예전 같지 않음이라, 체내 순환대사가 원할치 못한 건지. 밭은기침 잦고 까칠한 등 가려운 자리를 억지로 팔을 꺾어 더듬거리지만 어림없어 허리를 비틀기도 한다. 어릴 적 호롱불 아래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흙벽에 춤사위를 보이던 할머니, 결국엔 기차화통 삶은 큰소리를 낸다. 만만한 게 손주라, 고개짓만으로 등으로 돌려 세운다. 귀찮은 조무라기 눈길이야 짐짓 무시하고. 무명적삼을 훌떡 걷고는 당신은 늘어진 젖통을 비비며 내게는 가뭄 탄 논처럼 결진 등살을 좍좍 긁게 하더라만. 인생사 마음먹은 대로 건사치 못한다고 습관처럼 한탄한다. 창 밖에서 기웃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습기를 지우고 메말라 뼈대만으로 견디는 철쭉에 왜 할머니가 겹쳐 보일까. 장날 아니라도 엄마나 이모는 예사로 넘나들던 고갯길을 할머니는 한 번도 올라서질 않았다. 그저 동네 안이나 논밭뙈기에서만 맴돌아 손톱은 닳고 갈라지고 투박해진 손가락엔 피가 잘 통하지 않았다. 한 고개를 넘기 버거운지, 무서운 호랑이에게 떡을 하나씩 물리며 넘어왔다는 길을 당신은 시집 오던 날 밖엔 정녕 넘지 않기로 작정했다던가. 그렇게 싫어도 종국엔 그 고갯길을 넘으며 얼마나 서러웠을까.
어젯밤 가는비에 젖고 나중에는 기어이 형태를 바꾼 눈발에 습기를 재우며 숨 죽인 자태를 지켜본다. 아직은 멀었어도 봄 맞을 채비를 하겠지. 수은주가 영하에 머물러 저절로 움츠러드는 아침, 조심스레 박동을 키우며 꼼지락거리는 품이라니.













In My Dreamy Infancy * Praha.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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