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세상, 마음은 잠을 설쳤거든. 새벽 빗소리가 오죽해야지. 잠결에도 약속을 떠올려서인지 걱정했지. 오늘 우중산행이 괜찮을까. 예전같지 않아서 말야. 뭔 비라니, 요란스러운 이 빗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른 아침 통화를 하다가 면박만 당한다. 물보라로 뿌연 바깥, 물기 먹은 나뭇잎들이 늘어져 있다. 건너편 아파.. 不平則鳴 2011.07.26
추락한 시간들 아내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인가. 남편에게 아내는 어떤 의미인가. 부부란 과연 무엇인가. 달이 차고 이지러지듯 서로에게 채워주고 비우며 새로운 날을 꿈꿀 수 있는지. 비봉 암릉 구간에서 등산객이 추락했다. 사실 이곳은 위험하여 장비를 갖추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다. 가타부타 따지기 전에 결과.. 不平則鳴 2011.06.16
밭을 고르면서 쟤는 어땠어? 학교 다닐 적엔 대체로 두 부류잖어. 공부에 열중하는 녀석과 쌈질 잘하는 녀석으로. 어느 쪽이겠어?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 한 잔씩 들이키자 불콰하다. 개중 몇몇은 내내 티격태격하더니 결국 사달이 난다. 옆에서 말려도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씩씩거리며 판을 뒤엎고는 일어났다. 저녀.. 不平則鳴 2011.04.13
창 밖으로 늘상 보는 풍경은 아다지오Adagio여서 마음에 담기지 않았다. 아침마다 이용하는 지하철, 일부 구간이 지상에 드러나 있어 쫓아나올 때마다 발가벗긴 것처럼 안팎이 밝아진다. 큰 산 뒤편이 붉으스레하게 물드는 동녘과 미적거리는 해와 미처 숨지 못하고 창백하게 부서지는 중천의 달. 여름 내 산야를 .. 햇빛마당 2009.09.01
얼뜨기 걸음 각본이 탄탄한, 그래서 손에 땀을 쥐며 본 영화가 불현듯 끝났을 때의 아쉬움이란. 처음부터 다시 볼 수는 없고 별수없이 일어선다. 훤한 햇살에 눈을 뜰 수 없다. 영화관 안팎이 전혀 다른 세상이니. 그 판국에 덜컥 거울 앞에 서면 한숨부터 난다. 영화 속 멋진 주인공인양 우쭐하다가 마주친 못난이.. 不平則鳴 2009.05.27
살아 남은 변명 풀 죽은 친구 녀석. 그도 그럴 것이 사업에 실패한 작은 형 때문에 온 집안이 쑥대밭이다. 채권자들을 피해다니던 작은형은 나중 강원도 어디 탄광에 쳐박혀 있다고 했다. 거기서라도 환하게 웃으며 걸어나올 수 있다면 다행이다만. 속 깊은 녀석들이 입을 맞춘다. 앞에서 내색을 말자고. 막장이라는 .. 不平則鳴 2009.03.06
오리 날다 결혼해줘요. 글쎄, 결혼하지 않아도 이렇게 함께 살면 되잖어? 결혼을 해야 더욱 행복해지잖아요. 민들레 홀씨처럼 품 안에 담박 내려앉아서는 고집부리던 녀석. 아빤 진작 결혼을 했다고 해도 또 해달라고 졸라서 실소를 짓게 하질 않나. 입 안에 사탕이라도 굴리면 손가락으로 기어이 빼가던 녀석을,.. 햇빛마당 2009.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