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인가. 남편에게 아내는 어떤 의미인가. 부부란 과연 무엇인가. 달이 차고 이지러지듯 서로에게 채워주고 비우며 새로운 날을 꿈꿀 수 있는지.
비봉 암릉 구간에서 등산객이 추락했다. 사실 이곳은 위험하여 장비를 갖추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다. 가타부타 따지기 전에 결과는 참혹하다. 다친 남자 옆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내가 가련하다. 급한대로 누군가 응급처치를 한 흔적이 보인다. 호의로 우의를 덮어 두었는데 그래도 피를 많이 흘린 남자는 이를 마주치며 떤다. 너도나도 걸음을 멈추고 한 마디씩 던진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요?
구조대에 연락을 했겠지요?
헬기를 불러야 하지 않나요?
사람 왕래가 빈번한 구간이라 등산객이 끊이질 않는다. 아울러 말도 많다.
글쎄, 부인이 그 구간을 오르지 말자고 타일렀는 데도 오르다가 그렇게 되었다지 뭐에요.
하찮은 말이라도 새겨들어야 복을 받지. 스스로의 발길질로 내몰다니.
옆에서 변죽을 올린다. 나중에 와 영문을 모르는 이가 다급하게 되묻는다. 왜 헬기가 오지 않느냐고. 일반 등산로라 헬기를 띄우지는 않을게다. 아래쪽 문수사나 승가사까지 구급차로 이동한 다음 구조대원들이 이송장비를 들고 허겁지겁 올라올 것이다.
하지 말라고 못 박으면 일체 안하던 시절이 있었다. 왜라는 토를 달 필요도 없다. 해야 하는 일이라면 당연하게 행할테니 두말 할 일도 없고. 그에 비해 하지 말라는 건 왜 그리 많은가. 나중에는 이런저런 억제가 싫다. 열손 재배하고 있으려니 옴쭉달싹 못하는 금붕어처럼 처량하다. 회의가 들자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반발심에 어쩔 줄 모른다.
행사나 모임 등으로 나서는 날이면 아내는 입이 뾰루퉁했다. 개수대에서 덜컥거리는 소음이 불편하다. 산더미처럼 쌓아둔 집안일에 따른 불만이겠지. 나중 한꺼번에 해치우면 안될까. 속내야 짐작하지만 습관처럼 내보이는 행태가 못마땅하다. 침묵하며 지나쳐 버릴까 하다가는 참지 못한다.
길을 나설 참이면 심통을 부리니 불편해 견딜 수가 있나?
허허벌판을 떠돌던 바람을 떠올렸다. 들끓는 속을 간신히 잠재웠다고 생각했는데, 멍에를 지운 소처럼 말뚝 가장자리에서 발톱이 닳도록 어슬렁거린 내가 불쌍타. 추락한 등산객 옆에서 눈물 짓던 가련한 여자를 떠올렸다. 가지 말라고 이른들 아녀자 말에 고분고분하다면 그거야말로 우습잖은가. 역정으로 덮어 좋을 리 없건만 고리를 끊겠답시고 꽥꽥대는 이 아침의 나야말로 더 우습다.
Phil Coulter, Greenleaves Of Summer e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