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보는 풍경은 아다지오Adagio여서 마음에 담기지 않았다. 아침마다 이용하는 지하철, 일부 구간이 지상에 드러나 있어 쫓아나올 때마다 발가벗긴 것처럼 안팎이 밝아진다.
큰 산 뒤편이 붉으스레하게 물드는 동녘과 미적거리는 해와 미처 숨지 못하고 창백하게 부서지는 중천의 달. 여름 내 산야를 두텁게 덮던 초록 융단도 볼만하지만 비치는 구도가 삐뚜름한게 늘 불만이다. 그래도 하천을 이웃한 채 갈라진 풍경에 자리한 팍팍한 긴장감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건너쪽으로는 신축 아파트가 단장을 서두르고 있으며, 이편으로는 구겨진 단독주택과 단층건물 들이 구한말 빛 바랜 사진 속 서울 풍경처럼 올망졸망 옹색하게 쪼그리고 있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봇대를 가로질러 허공에 건 핏빛 구호가 눈에 띈다. 건너편에 저리 우뚝우뚝 짓는다믄 여게도 조만간 바람이 불겄지요. 짬만 나면 주판알을 튕긴다. 기대보다 더 빨리 휩쓸고 지나간 바람들, 그리고 반작용이 엇갈리며 눈에 보이게끔 형성되지 않는 그 무언가에 대한 체념과 분노가 인다. 해갈되지 않는 이 심정을 어케 해야 허남. 폭풍이 지나간 뒤처럼 평온해 보여도 누군가 부욱 성냥불을 그어댈 참이면 기세를 빌어 일어서는 건 시간문제이다.
업구렁이처럼 하천을 들쑤셔 구불텅구불텅 휘감아간 물길이 외려 평화롭다. 둑을 따라 호박 넝쿨이 박박 기다가 주황색 꽃을 폭죽처럼 터뜨렸다. 해바라기가 갸웃거리며 언저리를 쓰다듬는 멀건 햇빛을 보고 수줍게 웃었다. 흰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는 이른 시간부터 담팍 주저앉은 아지매 둘이 꼬무락거린다. 고추밭을 더듬는 손마디 굵은 손과 주름 패인 얼굴에 까무잡잡한 눈이 그려진다. 이제 막 엉덩이에 닿아 지분거리는 그림자를 따라가면 우람한 갈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밭뙈기에 그늘을 드리워 누차 베어 버리자고 목소리 걸걸한 이들이 침을 튀기며 일갈했겠지. 그럴 듯한 표식이라도 마을에 하나 있어야제, 하며 달랜 점잖은 소리가 있어 그나마 부지한 초록빛 영혼. 지금 마악 끄트머리부터 한 잎씩 노랗게 물들일 참이다. 그 옆 시렁을 타고 오른 능소화는 몇십 일 동안 애쓰고도 아직 꽃 백 개를 채우지 못했다. 목탁처럼 주렁주렁한 석류도 저희끼리 부비며 더 이상 살 찌울 일 없이 신맛만을 갈무리하면 될 것이고, 그런 자질구레한 일이 지겨워 눈 감은 동안 회화나무 꽃은 피고 졌다. 개울물이 흐르던지 말던지, 어릴 적 학교에 오가던 방천에서처럼 오십 년을 견뎌 온 백로 한 마리가 꿈쩍 않은 채 한결같이 날이 밝는 걸 지키고 있었다.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풍경은 지상 구간이 끝나면 뚝 끊겼다. 안 보이는 곳에서도 선선한 바람이 훑으면 꽃은 피고 질게다. 가을이라는 터널을 지나는 동안 변하고 싶은 것은 몸부림을 칠게다. 식별 못하는 동안에도 상전벽해가 이루어지겠지.
코를 높이는 수술을 하겠다는 작은 녀석에게 핀잔을 주었더니, 눈이라도 크게 하도록 해달란다. 대꾸도 않고 지났더니, 인제는 이름을 개명하게 해 달라고 울먹이며 졸라댄다. 고만고만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사실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자글거리는 용광로에 들었다가 속으로만 곪는 뻘에 나앉아 질척이기도 하는 우리.
Falling Leaves * Aequoani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