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여름속

*garden 2009. 7. 28. 09:55




드럼통에 갇혀 달아오른 여름. 바야흐로 내리막길에서 가속도를 붙이는 참이다. 퉁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닭 벼슬같은 깃을 늘어뜨린 맨드라미가 소리 죽이고 웃는다. 묵정밭에 난무하던 고추잠자리가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려다가는 자발없이 솟아올랐다. 드럼통 안이라도 꿈이야 꾸지 못할라구.
푸른 바다는 어때?
젖은 이끼 덮힌 계곡 바윗돌도 좋을 텐데 말야.
슬슬 부채질을 해도 입시를 저만큼 둔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제 일정에 바쁜 아이들 엄마도 마찬가지이고. 어쩌는 수 없지. 혼자 집을 나와 이글거리는 땡볕 아래 서자 점점 오그라드는 나.
아 참 나, 이 여름이 지겨워.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서 부비적거리다가 내퉁겨지듯 떨어진 소롯길, 달구어진 해가 갈무리 안된 불길을 내쏟아 사방이 텁텁하다. 사막 한가운데 나앉은 듯 인적이라고는 없이 푹푹 찌니. 그래도 삼잎국화 나란한 길 안쪽으로 아직은 폭죽처럼 터진 자귀나무 꽃 요란하고, 핏빛 능소화가 나발을 불며 넌출째 기어오르는 통에 불현듯 여기 여름잔치가 나를 위한 양 여겨져 슬며시 장난기가 돈다.


삼천이라고 되뇌이자 빈 속이 빽빽해진다. 한때 우리나라 총인구가 삼천만이랬다. 삼천 리 금수강산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고 불가에서는 세상 만물을 통틀어 삼천이라 했다. 낙화암 애절한 삼천 궁녀도 떠올리며 동방삭이 살았다던 삼천 갑자도 재며 최근 조사한 바로는 대기업 초임 평균연봉이 삼천만 원 조금 넘는다는 것도 생각해냈다. 뻘뻘거려서는 삼각산적멸보궁 삼천사에 닿았다. 어느 때에는 삼천 대중이 수도정진을 일삼은 대찰이랬는데. 세존진신사리 삼과를 모셨다는 데에도 불구하고 대웅전 안에 삼불상이 떠억 모셔져 있어 의아하다.
삼천사 내 매점에서 파는 사발면. 따뜻한 물까지 포함해 자판기에서 개당 천오백 원이다. 살집 좋은 선한 부부가 각기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오르는 계곡을 따라가자 한소끔 햇볕 따가운 암반에 누가 담아 놓았나. 그저께 마루금을 적시고 장대비도 그었겠다. 고인 옥류 속을 조무래기들이 첨벙거리고 있다. 천둥벌거숭이로 날뛰는 녀석을을 불러내 앉히자 하루가 딱 반이 지난다. 내 인생의 전반부도 저랬으니. 시퍼러둥둥한 아래윗입술을 간신히 벌리고는 건져주는 면발을 후루룩 빨아당기는데 동정심이나 가련함 들이 한 뿌리인양 삼켜져 사지백해에 퍼졌으니. 오늘 근무조인 큰사위도 왔더라면 좋았을걸. 자매와 손주들과 동행한 할머니가 혼자 동동거린다. 애들 옷을 사정없이 벗겨선 쪼그라든 고추 끝을 당기고는 웃었다. 후줄근한 옷은 탈탈 털어 반반한 바윗돌에 펴두었겠다. 큰애가 받는 손전화에 대고 일갈 사자후를 낸다.
어이쿠, 애물단지라도 내 새끼들이 그만이구만. 와중에도 새북에 일어나 팥버무리라도 해왔기 망정이지. 그런데 여그가 아주 좋아. 억지로 먼 데 가지 않아도 되갔어.


가만, 부처가 삼천사에 있었던가. 여름이 길게 누워 계곡을 요리조리 훑는 동안 아이들이야 마냥 즐겁고 그 새를 못참아 다시금 배가 불러오른 어미도 숨가쁘게 웃고 전화기로 들리는 제 어미 성깔에 아비도 마음을 놓는다. 고추당초 맵다는 시집살이 지나도 곱기만 했는데 어느덧 할미가 되었다니. 인제 물놀이마저 하지 못하는 청상과부댁이 계곡 한쪽 그늘을 차지한 나보고도 슬쩍 웃는 여름.












Love Makes The World Go Around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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