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살아 남은 변명

*garden 2009. 3. 6. 10:45




풀 죽은 친구 녀석. 그도 그럴 것이 사업에 실패한 작은 형 때문에 온 집안이 쑥대밭이다. 채권자들을 피해다니던 작은형은 나중 강원도 어디 탄광에 쳐박혀 있다고 했다. 거기서라도 환하게 웃으며 걸어나올 수 있다면 다행이다만. 속 깊은 녀석들이 입을 맞춘다. 앞에서 내색을 말자고.


막장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제 엄마와 티격태격하던 우리 아이 눈이 샐쭉하다. 왜 섭섭하냐? 위안차 묻는 말에 금방 되받는다. 대학 안가면 막장인가요? 석사학위를 딴 이웃집 아이를 승강기에서 마주쳤다. 축하인사를 건네자 자조적인 말이 날아든다. 아직 취업을 못해서 인생막장이지요. 음식점 종업원은 음식을 나르다 말고 텔레비전 프로에 눈을 꽂고 있다. 사람들이 막장드라마에 왜 저렇게 열중할까?
막장영어, 막장대한민국..... 급기야는 막장국회, 막장범죄 등 좋지 않은 뜻으로 갖다 붙이는 용어에 대해 석탄공사 사장이 항의와 함께 용어 사용 자제를 요청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땀 흘려 일하는 숭고한 산업현장이고 진지한 삶의 터전이 왜 그렇게 매도되어야 하냐면서. 의도야 수긍하지만 그런다고 말이 정화될 수 있다면야.
세계화가 실감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이 조그만 구석 속옷업체 이름을 바꿔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반항아의 대명사인 유명배우의 이름을 상표에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횡성군에서는 한우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국의 육소간에 횡성한우라는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한다.
심심하면 들르는 생맥주집. 한 이십여 년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는데, 대파를 썰어 넣은 골뱅이 안주가 일품이다. 어느 날 뚝딱거리며 실내를 개조한 옆 식당이 근사한 생맥주집으로 탈바꿈되었다. 간판을 걸었는데 골뱅이 안주의 원조라고 크게 쓰여져 있다. 그것도 휴일을 빌어 터억 걸어 놓았으니. 쫓아가 항의를 한들 소용 있나. 법대로 하라는데 그럴 수도 없고 씁쓰레하다. 재개발로 빚어진 용산참사가 나기 전 그 쪽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 요즘 부동산 많이 올랐겠구만, 했더니 팔을 홰홰 두른다. 어이구, 말도 마. 그건 국한되는 곳의 얘기구. 우린 전혀 적용이 안돼.
소유나 부존으로 인한 불균형이 사람들을 절망케 한다. 있는 이는 있는 만큼 더 필요하고 없는 이는 없는 것 때문에 슬프다. 생활고에 찌든 어머니가 남매를 죽였다고 한다. 달랑 몇 줄 안되는 기사를 보고 저변을 추측하기는 어렵다. 어려운 세상에 아이가 남겨지는 게 두려웠을까. 어떻게 아이를 자기 소유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폐암으로 입원한 아이 외할머니. 쾌적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 암진료에 있어 일가견이 있다는 몇 안되는 큰 병원이래도 답답하다. 사람을 이리 가둬 두면 어떡허나? 코를 킁킁거려도 공기 중에 떠도는 아련한 풀 냄새가 여긴 없다. 불쑥불쑥 마을 앞을 돌아나가는 물소리를 듣고 싶고 까만 하늘에 흩어놓은 별가루가 보고프다. 시골에 데려다 달라고 조르는데, 아이들은 근심어린 눈빛이다. 글쎄, 아직 검사중이니 좀 참고 계세요. 병실이 답답해서 견딜 수 있어야지. 겨우 주먹 하나 내놓을 수 있는 창을 열어 놓았더니 다른 환자들이 역정이다. 하릴없이 오가는 복도는 늘 봐도 낯설다. 나중에는 주변 식구들을 들볶으며 화를 마구 냈다.
마침내 퇴원하여 한주일이나 집에 머물렀을까. 병원에 다시 실려왔다. 그나마 생체 기능도 가물거린다. 두 다리로 서있을 수조차 없다. 문병을 가서 눈이 마주쳐도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 병원에서 나온 식반 음식을 말끔히 치우는데, 잘 먹기라도 해야지 싶은 결연한 의지를 보는 듯 하다.
저번엔 당신 육신에 대한 분노 때문에 어쩔 줄 모르더만 인제 체념해야만 하다니, 이도 서글픈 노릇이다.












Serenade * david garr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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