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봄은 어떻게 오나

*garden 2009. 3. 20. 15:24



가끔 함께하는 북한산행팀, 오늘은 유독 흐느적댄다. 그도 그럴 것이 휴일이다. 곳곳에 사람들이 산개하여 북적거리니 방법이 없다. 산이 좋아도 인파엔 넌덜머리가 나 틈만 나면 투덜댄다.
이건 산인지, 시장판인지 알 수 없어. 그나저나 어디서 밥이라도 먹어야지?
봉우리를 몇 개나 넘어 시간이 지체되었다. 헌데 마땅한 공터가 없다. 눈길 닿는 곳마다 사람이 들이차 있으니. 숲 아래쪽을 뒤지던 이가 손짓한다. 앞서 자리잡은 일행이 있었지만 양해를 구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른들인데, 산행으로 단합대회를 꾀하던 중인지 표정들이 상기되어 있다. 와중에 우리가 몰려가 시끌거리자 못마땅하다. 요전번 비가 적셨다고는 하지만 마른 등성이에 먼지가 풀풀 인다. 몇 번 못마땅한 눈길을 주던 이 중 누군가가 벌떡 일어섰다. '빽!'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일행도 덩달아 화를 낸다. 이번에는 노골적이다. 이럴 줄 알았지. 허나 오는 말이 거칠면 가는 말도 험해지는 법. 이쪽도 나이야 어느 정도를 넘긴 사람들이어서 개중 몇몇은 고분거리기는 커녕 입을 삐죽한다. 그러다가 업신여김까지 감지하자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결국 진중한 이 몇이 툴툴거리는 입들을 막고 죄송하다는 인사를 수 차례나 건넨다. 겨우 앉았다. 나이가 벼슬이다. 쉬이 누그러 들어야지. 숫제 먼저 잡았으니 우리 땅인데 감히 하는 투로 힘끔거리며 노기를 보이는 어른들. 이걸 수컷들의 영역 다툼이라고 해도 될까. 고집이 몽니처럼 다가든다. 멀리서 볼 땐 좋던 풍경이 저리 옹고집으로 뭉쳐져 있을 줄이야. 반발하는 기미라도 보이면 누군가 벌컥 할 게다. 대접해 주기를 따지며 일면 자조도 하겠지.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까 하며.

어른을 병원에 모시고 가 갖가지 검사를 해댄다. 마지막으로 뼈검사를 하려는데 안하겠다고 막무가내이다. 결국은 포기했다가 다른 날에 들것에 올려 다시 갔다. 그 새 전이된 암세포가 사방에 퍼졌다. 인제는 뼈마저 엉망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데. 어리둥절해 있던 자식들이 한탄한다.
저번에 뼈검사라도 했어야 하는건데.
지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 그게 운명인걸 어떡허나.
끊고나자 야박한 듯하여 덧붙인다.
나이 들면 어느 정도 젊은 사람 말도 듣고, 고집도 굽힐 줄 알아야지.


잘 늙는 모습은 어떤 건가. 숀 코네리Thomas Sean Connery나 클린드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를 보면 새삼 감탄스럽다. 007 시리즈로 익숙한 스코틀랜드의 영화배우 숀 코네리는 젊은 시절보다 오히려 나아 보인다. 또한, 마카로니 웨스턴에서의 무법자 캐릭터를 거쳐 더티하리의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역을 지나 제작이나 감독까지 도맡아 연출해 낸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나이 들어 원숙한 주름이나 연륜이 잘 어울리는 배우이다. 한참 전 메릴 스트립과 연기했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지나 '용서 받지 못한 자'나 '사선에서'를 보며 깊은 이끌림을 경험했다. 최근에 개봉한 '그렌 토리노'에서도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고 들었다. 세월이 지나서도 주눅들지 않는 자기만의 근사한 세계를 우려낸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갑자기 달뜬 기온에 다들 웃통을 벗고 활보한다. 동시에 황사가 천지에 난무했다. 그게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내려 다음 날이면 기침들을 한다. 남녘에서 나날이 올라오는 화신에 솔깃한다. 옆에 있던 누군가 청한다.
이번에 개심사에 갑니다. 사정이 어떠하신지요?
고즈넉하게 앉은 오래된 지붕의 가지런함과 심검당을 떠올리다가 갸웃한다. 꽃사태가 벌써? 그와 함께 역사를 한답시고 파헤쳐 놓은 절간 어수선함을 생각해내자 고개를 흔든다. 순천만의 놀과 선암사의 매화, 세량지 반영을 되뇌이며 이끄는 말을 되씹다가 한편으로는 오늘내일을 분간 못하는 편찮으신 어른을 생각했다.
이맘때 세상을 가름하여 은빛으로 빛나는 섬진강가에 누구와 함께 서 있었던가. 그 언변 매화 꽃망울이 터질 때의 그윽한 향내에 혼몽한 적도 있었지.
춘분 밤은 길기도 하다. 자다깨다를 반복하여도 어둠의 터널이 이어지고 있으니. 밤새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일어났어도 세상은 아득했다. 부리나케 쫓아나가다가 아파트 아래 나무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잠잠하던 가지에 하얀 꽃비가 불현듯 내려 환한 봄을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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