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서 꼬물거려도 평온해야지 싶었는데, 걷기 시작하자 걸음이 차츰 빨라졌다. 이래선 안돼, 상념이 많아져선. 그렇찮아도 주변 북적이는 인파에 정신이 산만해져 있었다. 제자리에 선다. 배낭 끈을 잡아당기며 덩달아 들쑥날쑥해진 숨을 조절한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시끌벅쩍 지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섬처럼 한참 떠있었다. 내가 아닌 듯 나를 느껴 보고자 하지 않았던가. 시선을 들자 우뚝한 의상봉과 원효봉의 자태. 여기는 산행 들머리로 북한산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다. 어느 지점까지는 감수해야지. 올라가다 보면 노적사나 공덕비, 중흥사 터 등을 지나 북한산의 심장부 격인 행궁지에 다다른다. 거기서 716봉쪽으로 꺾어들까. 호젓한 길에서 생각을 가다듬고, 트인 곳에서 우람한 진산의 모습을 담자. 그리고 청수동암문을 지나 대동문쪽으로 내려가자. 머릿속에 선을 그었다.
보폭을 일정하게 떼야지. 짧고 빠르게 호흡하자.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걸어야지. 잊어버리면 안되기라도 하듯 웅얼거린다. 되뇌이는 동안 햇볕이 따가워 눈쌀을 찌푸렸다.
내몰리듯 쫓아나온 몸이 혼란스럽고 얼떨떨하다. 꽃구경 가는 인파에 뒤섞이기 싫어 뭉그적대며 게으름이라도 즐길 요량이었지. 몇 번이나 제 방에서 나와 눈치를 보던 아이가 조그맣게 묻는다. 오늘은 산에 안가세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애 엄마까지 가세한다. 오전 시간에 약속이 있어 나가야 된다며 단초를 놓다니. 주저앉아 있는 꼴을 못보겠다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쉬는 모습을 보여선 안되는가 보다. 한숨을 쉬며 집을 나선다.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시외버스에 올라 이동한 다음 산 아래 섰다. 적당한 거리에 나를 얹어보자. 한발한발 걷다 보면 마음에 열정도 끓어오를 게다. 다산도 걷는 게 청복淸福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르막을 치다 보니 옷을 껴입은 탓인지 목덜미에 땀이 찬다. 들숨을 크게 쉬어 폐부 깊이 넣고 날숨을 바투 뱉었다. 메마른 나무들이 몸을 부풀리며 흔들린다. 웅크린 바위가 꿍얼거린다. 다져진 흙 아래쪽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올라 커진다. 안팎을 가름하고 있던 경계가 차츰 허물어졌다. 자박자박 걷고 바위를 딛고 오르는 동안 몸의 긴장이 비로소 풀린다. 한주 동안 앞뒤 돌아볼 겨를없이 내달려 배인 속도감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며 조금씩 늦춘다.
중성문으로 오르기 전의 북한동. 오래 전부터의 삶의 터전인 이곳은 음식점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조만간 철거로 내몰릴 판국이라, 여기저기 핏빛 현수막이 요란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새 봄은 쫓아 들었는지 사방이 환한데, 얼음장으로 덮여 있던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기도 하다. 바위에 빨판을 부착하고 오르는 중에 말라붙은 덩굴식물도 다시 생기를 되살리는 계절. 아래쪽에 봄이 들이차도 이곳은 더디다. 저번까지도 바람이 차갑고 희끗한 눈이 응달에 뭉쳐있는 게 보였는데, 구석진 곳까지 낭창낭창하게 비추는 햇살.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꿈틀거리나니. 바람이 불어 표나지 않게 바꾸는 세상. 온순해지는 사위가 인정하지 않을래도 어쩔 수 없는 봄이지 않은가.
침묵에 잠긴 시간들이 조금씩 깨어난다. 한 왕조의 흥과 쇠를 더듬듯이 계절의 바뀜과 은연중에 변해버린 시절을 떠올리면 감개무량하다. 언제 우리가 꿈을 꾸었던가. 꿈 속에 스러진 이는 누구이며 꿈을 쫓아간 이는 또 어디 있는가. 아이들에게나 주변에 변화하라고 갈파하면서도 늘 나는 한자리에 들어앉아 있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만 움직이는 로봇처럼 틀이 만들어지면 벗어나지 못하고 보수가 되는 집착. 그렇게 사는 게 정론이라고 강변하면서.
나무들마다 속살을 터뜨리며 햇빛을 흩인다. 허공에 너울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정녕 선녀의 강림이라도 있는 건가. 싸한 바람이 불어 겨울을 흩이고 봄을 뿌린다. 멀리 있던 암봉이 속에 감춘 심을 굴려 우르릉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