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비무장지대

*garden 2009. 4. 10. 12:16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 늦게 들어서는 중에도 환호를 보내준다. 자리에 앉자 난무하는 익숙한 시끌거림. 예전처럼 욕도 내지르고 어리광도 부리며 걸죽한 분위기에 녹아드는 알록달록한 아이들. 개중 한 녀석이 다가와 옆구리를 툭 친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슬쩍 근황을 묻더니, 자기는 요즘 골프장을 자주 찾는다나. 아하,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자 묻지도 않은 사정까지 주절주절 흘린다. 적성에 잘 맞는 스포츠라고. 스윙 동작까지 해가며 입바른 당위성을 처억 붙인다. 만남과 소통의 장이어서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나. 지연이나 학연, 혈연이 바탕이 되어 어떡하든 미워할 수 없는 녀석들이어서 가끔은 이런 허세라도 부려서 웃게 되나 보다.


술자리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처음에는 취중이라 그럴 수 있겠거니 했는데, 정말 드잡이질을 하다가 술집 앞 대로에 나가 맞장을 뜬다. 한쪽은 사생결단이고 다른 쪽은 방관하며 엉거주춤한다. 놔 둬. 저러다 말지 했지만 순식간에 골은 깊다. 밤하늘에 고함이 쩡쩡 울리고 발길질과 주먹이 오간다. 사연인즉, 누구는 노란 김 선생을 지지하고 또 누구는 하얀 백 선생을 지지하는데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 자못 분개하여 대치하다간 뒤엉켰다가 튿어지고 들어오는 데 엉망이다.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며 앉아 있던 일행에까지 시비를 건다. 이게 남의 일이오? 그렇게 구경들 하게. 벌컥하는 말 끝에 색깔을 분명히 하라며 삿대질이다. 거참, 입맛만 다실 수도 없고.
정치에 관심이야 둘 수 있지만 죽네사네 할 정도로 몰두해야 하나. 지각 있는 이들은 진작 혐오감을 보인다. 몇몇은 앉기 전에 아예 홰를 내두른다. 종교나 정치 이야기는 일절 말자. 그래도 나중에는 감초처럼 슬금슬금 이야기를 꺼낸다.


정당 대변인이 등장한다. 변을 들으며 왜 낯이 찌푸려질까. 뻔한 사실에 대한 핑게가 재미랄 수도 있겠지만 별로 달갑지 않다. 상대에게는 행위에 대한 준열한 심판의 잣대를 갖다대라고 독설을 뱉으면서 나의 행위는 차치해둔다. 외려 원인제공에 대한 장황설만 지루하게 늘어놓고 궁지에 몰리면 짖어야 한다는 식의 신랄한 비판이나 날리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청문회에 나서 온전한 치는 없다. 이익이라든지 정략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그런 속 얕은 자들을 공복이라 하다니? 이 일단의 무리들을 오죽하면 정치꾼이라 할까. 때로는 시장 모리배나 협잡꾼들도 저렇지는 않을 텐데 싶어 혀를 찬다. 그저 묵묵히 부지런히 살면 되는 줄 아는 일반 사람들이 왜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점점 어려워질까. 민리민복을 위한 정책 집행은 대체 어떻게 되는가. 다들 아쉬워하는 부분은 당대당의 협력이나 정책 추진 방향성에 대한 이해나 협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당파의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당정치가 우선이어서 당론이 정해지면 찬성과 반대라는 선을 미리 그어두고서 거수를 한다. 상대측 의견에는 무조건적인 거부를 행사한다. 물론 싸우는 동안 일부는 원래의 입안과 다르게 변질되어 통과되기도 한다. 이는 이해관계가 맞는 부분을 주고받는 뒷거래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너희들과는 절대 마주 하지 않을거야, 선언한 말은 나중 들리는 뉴스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렇게 상대를 야멸차게 몰아부치고 윽박지르며 거세를 일삼던 이들이 은밀한 곳에 모여 거래한 표리부동한 면이 드러나기도 해서. 일말의 성과를 위해 연줄을 찾아 사정하기도 하고 계보를 따져 특사를 보내 해결하기도 한다.
그게 사는 방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 한가지 원리나 법리만 적용하기도 어렵다. 세상일은 접근 방식이나 상황에 따라 갖가지 파행의 양상을 보이기도 해서 이에 따른 논조가 상이하게 나타날 확률이 더 많다.
앞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지만, 최근 시끄러운 북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마냥 우호적일 수 없건만 내는 목소리는 천양지차이다. 형제 중 망나니가 있어 하는 짓거리마다 못되게 굴고 큰소리를 치며 협박만을 일삼아도 그렇게 처리할까.
더불어 살자는 데에는 공감한다. 허나 제약이 생기면 파훼해야지. 곳곳에 파열음이 일만큼 힘든 때여서인지 아전인수의 못볼꼴이 득시글댄다. 주어지는 파이가 많고 커야 하는데 정해져 있는 양을 잘게 쪼개어야 하니 쉽지 않다. 여기에 나눌 파이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구조적 문제라고도 하지만 이는 핑게이다. 또 한편에서는 대화 단절에 따른 누군가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등 복잡다단하게 끌고 간다. 결국 나는 괜찮은데 주위 환경 탓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실리를 추구하거나 영합적이거나 정치적이지 않을려고 했다.
업무에 소용될 인재가 부족하다. 황야를 헤매는 늑대같은 상사에게서 요청이 왔다. 무심코 사람을 소개했는데 나중 불같이 화를 낸다. 사람이 사람 마음에 들기란 참 어렵다. 허나 상사는 소개하는 사람에 대해 그 이상의 무한책임을 지기를 원했다. 시절이 하수상해서 함부로 아무나 쓸 수 있어야지. 일터도 하나의 투쟁의 장으로 연계되어 버리던 때이기에. 또한, 그 상사가 나의 든든한 조력자이기도 해서 쉽게 넘어갈 수도 없다. 이 사회가 어떤 곳인가. 서 있으려면 직장이든 어디든 연줄 없이 버틸 수 있던가.
꽃비 내리는 봄날, 무슨 억하심정이냐고들 하겠다. 맞아. 신나는 일이라고는 없어 하는 넋두리일 뿐이다.





 

21776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 피고 지는 일  (0) 2009.04.17
죽고 사는게 음악뿐일까  (0) 2009.04.14
북한산의 봄  (0) 2009.04.07
서불과지  (0) 2009.03.25
봄은 어떻게 오나  (0) 2009.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