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서불과지

*garden 2009. 3. 25. 15:21






정방폭포 암벽 마애각 '서불과지(徐市過之)'





남쪽 바다에 홀로 섰다. 살랑거리는 바람과 눈부신 햇살에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일을 두고 무수한 생각만 갈래를 쳤지, 어디에서도 길을 찾지 못했다. 미련으로 미적거릴 때 말이지. 떨고 떠나자 차츰 나아진다. 내 처지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어젠 비바람으로 몸도 제대로 못가누게 만들더니, 오늘은 다르게 금빛 대양을 펼쳐 보인다. 정방폭포로 내려가는 길은 이른 시각에 열려 있지 않아 방책을 타넘었다.
B.C 210년, 제주도 조천포朝天浦 앞 바다에 다다른 일행. 이른 시각 무심코 바닷가에 달려나온 아이들이야 깜짝 놀랐겠지.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수많은 배를 보고. 이미 해변가엔 사람들이 잔뜩 내려 있다. 도열한 동남동녀童男童女 삼천 인 사이로 금빛 화복에 안광이 형형한 재사가 뱃전에서 내린다. 좌우에 시중을 거느리고, 해뜨는 동편에 차려진 제단으로 나아간다. 한모금 향을 뿌리자 세상이 그윽해졌다. 하늘을 우러러 제를 올리고 재사는 땅에 입을 맞추었겠지. 이는 진나라의 방사方士 서불(徐市, 혹은 徐福)의 모습이다. 의술이나 점술에 능해 신임을 받았다. 천하통일을 이룬 진시황의 명으로, 일찍이 곤륜산崑崙山의 천년 묵은 고목을 베어 건조한 배에 사람들을 거느리고, 지금은 술로 유명한 교남 량냥타이를 출발하여 서해를 건너왔다. 불로장생을 위한 영약을 구하려고.
나중 서불은 금강산, 지리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로 일컫던 한라산에서 신선의 열매라는 시로미(임고란)를 얻은 후 일본으로 들어갔다. 이에 대해 서불이 동쪽으로 온 것을 동도東渡, 서쪽으로 돌아간 것을 서귀西歸라 하여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 역서에 기록이 나오듯, 기원전 3세기 서불 일행의 제주 도래설濟州渡來設은 사실이다. 이를 집단 망명이라 해야 할지 설은 분분하지만, 불로초를 구하지 못한 서불은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전설로만 치부할 수 없는 고대사의 일부분이다.


휴일이라 든 배가 없어 생물을 구할 수 없다. 차선으로 어제 서귀포시장에 나가 사 온 전복이나 생선 등으로 아침 요기를 한다. 어디를 헤매더라도 좋겠지만 대강 더듬어보고 나서야지. 쇠소깍이나 돈내꼬를 들러보자. 산굼부리나 비자림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게다. 그러기에 앞서 우선 거래처 회장이 편의를 봐준 별장지기에게 한푼 쥐어줘야지. 차 운행을 맡겨선 가까운 이중섭 생가부터 들러보자. 늘 앞에 따라다니는 수식어, 불운의 천재화가라는. 그래도 한국전쟁의 와중에 여기서 피난 생활이라도 할 수 있었다니 다행이다. 아름다운 서귀포의 풍광이나 넉넉한 고장 인심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먹을 게 없어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잡아먹은 게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게는 아이들 미술책에 실려 있는 우람한 근육질의 황소 그림과 함께 유작으로 남았다.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나 '바닷가의 아이들'도 이맘때 그려졌다.
비교적 장신이라고 들었는데 일가족이 머물렀던 방은 어찌 그렇게 작을까. 온전히 발을 뻗고 눕기조차 힘들었으리라. 결국은 가난에 지쳐 아내와 두 아들은 여기서 일본으로 건너가 버린다. 궁핍과 외로움 들이 어떻게 구현되었던가. 마당엔 때이른 머위 싹이나 개불알꽃이 돋아 낮은 곳에서부터 계절을 알리고 있었다. 하나가 걸쳐져 있으면 주인이 근방에 나가 곧 돌아온다는 표식이고, 둘이 걸쳐져 있으면 이웃에 나들이 나가 금일 돌아오기 힘들다는 표식이고, 세 개가 다 걸쳐져 있으면 멀리 출타중이어서 당분간 돌아오기 힘들다는 나무기둥, 정낭이 입구에 놓여 있다.


사진이라도 몇 장 찍으려고 이리저리 견주지만 마땅치 않다. 왜 이럴까. 바깥에서도 마찬가지. 조망이라든지 전혀 생각지 않고 덜컥 놓인 주변 건축물 탓이다. 여타 관광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 구도를 잡으면 꼭 요소에 푯말이 서있거나 전깃줄이 지나고, 아니면 철탑이나 엉뚱한 방책이 방해가 된다. 그러고 보니 이곳만이 아니다. 애써서 달려가면 깊은 산중 외딴 절에 느닷없이 차일을 쳐두고는 먼지를 풀풀 날리며 뚝딱거린다. 원래의 것도 괜찮을 터인데, 이리 뒤집어 놓은 게 태반이어서야. 꼭 다시 세워야만 할까. 그렇게 만든들 전통을 어떻게 갈무리하고 은연중에 드러낼 수 있을 건가. 고궁이나 공원도 마찬가지. 오늘 옮겨 심은 아름드리를 내일 베어 버린다. 사실은 깊은 산중 어디를 헤매더라도 쉽게 만날 수 없는 하늘을 받힌 나무가 아닌가. 건축공기를 채우기도 전에 순식간에 세워진 물건에 애착을 줄 수 있어야지.
오늘 서불처럼, 이중섭처럼 애닯프게 간구하는 것도 없이 스쳐 지나며 무엇 하나 마땅하게 담지 못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My Love Is Like A Red, Red Rose * Oliver Schr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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