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때마다 이용하는 지하철, 여느 때처럼 육호선 뒤쪽에서 넷째 번 칸에 올랐다. 마침 빈 자리가 나 비집고 앉았다. 개학을 해 복잡한 건가. 오른 기온 탓인지 후덥지근한 차내. 목도리를 끌렀다. 오늘은 조급증으로 허덕거리지 말아야지. 느긋하게 열자. 밝은 뉴스만 읽자. 스스로에게 당부하며 신문에 눈을 준다. 촘촘한 기사 행간을 훑는데 쉬지 않고 덜컹거리는 전동차 소음,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역에 들어설 때마다 우르르 내리고 타는 바쁜 사람들. 통조림 내용물을 집어낸 것처럼 하루 시작이 늘상 분주할 수밖에 없겠지. 지난 시간의 피로를 지우지 못해 졸고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그 참에 들리는 뾰족한 음성에 일순 귀를 세운다.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눈쌀이 찌푸려진다. 여학생 너댓 명이 문가에 몰려 서 바야흐로 주고받는 대화가 점점 과격해지고 목청이 높아진다. 한 아이가 말을 꺼내면 대꾸를 붙이고 간섭하는 형태로 말이 끊이지 않고 와글와글 진행된다. 전화가 왔는지 걔중 한 아이는 통화를 시작했다. 큰소리로 거리낌없이 깔깔대 듣는 이가 민망하다. 다들 제지하고픈 분위기인데, 눈치가 없는 건지 원. 눌러 참느라 우락부락한 사람들 표정을 왜 모를까. 내 옆에 앉았던 중년 사내가 혀를 차더니 벌컥 일어서 내린다. 아니면 목적지에 닿은 참에 역정을 낸 것인지. 그러자 시끌대던 아이 하나가 쫓아와선 제꺼덕 앉았다. 뒤따라 다른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선 내 주변이 시장 바닥처럼 되었다. 이래서는 아침이 엉망이다.
경망스런 태도야 그렇다 하고 내내 거슬리는 건 오가는 언사이다. 영화의 리드미컬한 외국어 대사나 회의 중의 정중한 언어 구사라든지 절제된 표현을 바라지야 않지만 여자 아이들이 왜 이럴까. 이건 숫제 욕지거리로 시작해선 쌍소리와 알아 듣기 힘든 은어 들로 뒤범벅해 모른 체하고 있기도 거북하다. 친구라든지 담임 선생이나 식구들이 화제로 등장하는데, 본인이 여기 있다면 난도질되고 체면이 구겨지는 소리를 듣고 견딜 수 있을까. 두 아이 대화에 끼어든 아이는 목소리마저 왜 저렇게 갈라져 듣기 싫을까. 거기다가 철딱서니 얘기를 말이 안되게 늘어놓고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몸을 흔들며 낄낄거린다. 듣고서 앉아 있기 힘들다. 순간 앉아 있던 아이가 습관적으로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달달거리는 진동이 전해질 정도로. 고개를 돌려 눈총을 줘도 막무가내로 떨길래 결국 손으로 툭 쳤다. 힐끔 눈길을 던지는 것까진 좋은데, 이 녀석은 가타부타 반응도 없이 다시 제 친구들과의 대화에 몰입하다니, 쯧쯧. 이걸 어떡하나 싶은 생각도 잠시, 참아야지. 아이들을 상대로 언성을 높이며 헐크처럼 변해봐야 나만 못할 노릇이지.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대로, 대학생은 대학생대로 모여서 또래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면 말이 찢어지고 날카로운 게 사납기 짝이 없다. 인터넷 기사에 뜬 댓글들을 보면 기사 내용과 상관없는 온갖 인신공격이 섬뜩하다.
갈수록 말썽을 부리는 아이 때문에 화가 났다. 그렇찮아도 감수성 예민한 녀석에게 어릴 적처럼 매를 들 수 없다. 불러서 세우고는 무자비한 언어도 후려쳤다.
정신차려, 이 녀석아. 네 생각처럼 그렇게 세상이 호락호락한 줄 아냐?
다음 날 아이 엄마가 식탁에서 눈짓을 한다.
어, 바쁜데 무슨 일이오?
바빠도 꼭 들어야 한다나. 얼른 말하라며 채근하고 앉았더니, 아이가 친구와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단다. 혼난 이야기를 하며 속상해 하더라고. 그게 참 이상하다. 분명히 제가 잘못한 일을, 속속들이 들춰내 바깥에 알리다니. 아무리 철이 없다지만 창피한 것도 모르나. 갸웃하다가 생각을 넓힌다. 아마 이 녀석은 행동의 정당성을 따지기보다 누구에게라도 위로 받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데 '아차' 했던 건, 내게서 쫓아나가 아이를 때리고 다시 다른 입을 통해 전해 듣는 내가 뱉은 말들이 왜 그리 메마르고 황폐하던지.
앞뒤 따져볼 계제 없이 돌아가는 세상. 일이 생기면 눈을 부릅뜬다. 결과만을 혹독하게 추궁했다. 저변을 헤아리기보다 듣는이가 찔끔하도록 신랄하게 공격한다. 결국 말의 비수는 돌고 돌아서 내 등을 파고 들었다. 향내나는 말을 뿌려 봄날 햇살처럼 상대를 밝게 만들고 감동시키는 단순한 진리를 어느 때부터 팽개쳐 버렸다.
지하철에서 내려 떼는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저만큼 횡단보도 불이 깜박거리자 뛰기 시작한다. 허겁지겁 회사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자 서랍을 열어 서류를 펼쳐 검토하고, 책을 꺼내고 사전을 펴는 등 수선을 떤다. 아침 인사를 건네며 누군가 책상 앞에 와 선다. 가라앉은 음성으로 차갑게 던졌다.
무슨 일이에요? 용건만 잘라 말해요!
Musicbox Dancer * Frank Mil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