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고 집중하랬다. 허나 봄날 꽃잎처럼 가볍게 오르내리는 마음을 글 이랑 사이에만 쳐박아 둘 수 있어야지. 엉거주춤 고개를 들자 열리는 세상. 꽃들의 요염한 자태와 좇아나온 벌, 나비 들이 펼치는 생의 군무. 입이 벌어진다. 여느 사람들의 환호를 기대하고 둘러보다가 머쓱해졌다. 봄날 햇볕이 무리이다. 몰두하여 묵묵부답인 세상에 혼자 달아올랐으니. 건너편 여자애는 단발머리로 얼굴을 반이나 덮고선 손전화에 집중하여 아까부터 손가락이 쉴새없다. 또박또박한 자취가 전파로 고스란히 전해지도록. 그 옆 더벅머리에 북북 찢은 청바지를 걸친 청년은 제대로 세면이나 했는지. 수염은 웃자라 거칠고 여드름이 덕지덕지 자리잡아서는. 눈길 준 디엠비에 점점 빠져든다. 혼자 쿡쿡 웃음이나 흘리면서. 한걸음 지나 키가 껑충한 녀석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실눈만 뜨고 있다. 다리를 떨어대는데 이어폰 밖으로 쉭쉭거리는 비트음이 새어나온다. 심지어는 나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인데, 저래도 귀청이 온전하다니. 가만 이건 라틴쪽 보사노바 빠른 리듬인가.
짝꿍으로도 앉았음직한 봄이는 어린 시절 얼굴에 주근깨가 많았다.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주근깨들이 전이되는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나중 훌쩍 자란 봄이 얼굴은 화사했다. 눈을 씻고 찾아도 주근깨가 보여야지. 뒷자리 명숙이는 지독한 말라깽이였는데, 근사한 옷을 걸치고 나와선 하얀 이를 드러내고 어울리지 않게 크게 웃는다. 옷이 날개라더니.
소리에 음감을 입힌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봄이가 화장을 했듯이, 명숙이가 겨자빛 기장이 긴 겉옷에 다홍치마를 받혀 입어 변하듯 앞과 뒤가 전혀 달라 황홀해지는 경험이다. 의식이나 예배를 위해 혹은 행사에 연주되거나 의사소통이나 오락이 되기도 하는 음악. 한때 몰두하여 나도 세상 모든 음악을 듣고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인 적이 있다. 종일 음악을 듣고 분류하여 정리한다. 그리고 재고 가린 장르의 곡을 족집게처럼 뽑아둔다. 일상에서 접하는 음악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거기에 만날 집과 일터만을 오가며 빈둥거리기엔 피가 뻗치는 때여서. 소리를 재생시키는 좋은 오디오도 필요했지만 언감생심이라, 우선 레코드에 마음을 둔다. 귀한 음반이 있다면 지방 원정도 서슴치 않는다. 들을만한 곡이라면 모조리 금지곡이 되어 버리던 시절이다. 국내곡으로 황성옛터나 아침이슬, 동백아가씨는 말할 것도 없고 고래사냥이나 날이 갈수록 등등. 특히 막돼먹은 가사와 묵직하고 소란스러운 음을 바탕으로 삼는 헤비락 같은 것이야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밥 딜런이나 데이비드 보위, 앨리스 쿠퍼 등 우리가 좋아하는 음반은 거의 금지곡으로 묶여 듣기 힘든 때였는데 나름대로 방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빽판이라고, 청계천 등지에서 찍어 나오는 불법복제음반이 그것이다. 조악한 음질이라도 갈증을 해소하는 데에야. 바늘이 물결 이랑을 따라 스크래치를 훑으며 소리를 재생시키면 몸과 마음이 떠올라 후련했다. 요행히 트래픽의 존 바리콘 같은 곡이 담겨진 음반을 구한 날이면 두근두근하는 심장을 억누르며 준복이네 집에 모였다. 녀석에게 근사한 전축이 하나 있었으므로. 어느 날 하교시에 선배에게 영문도 모르고 붙잡혀 투덜대며 시간만 죽이고 있을 때 듣던 말, 시내 선술집에 나가야 한다나. 말 끝에 붙이던 지하가 왔다, 라는 한마디로 가슴 쿵쾅거릴 때처럼.
순옥이도 나처럼 레코드를 섭렵하는 버릇이 있다. 찾는 음반이 있다면 일어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음반을 구해 오면 A면과 B면을 샅샅이 훑어 곡을 고르고 목록을 만든다. 민규나 영주는 침대가에서 열변을 토해냈다. 남자 녀석들이 어울리지 않게 긴 속눈썹을 깜박거린다. 허나 진지하다. 묵직한 바리톤으로 해외 그룹이나 팝에 정통하여 최신 정보를 읊어댄다. 음악으로 소통을 만들고 같이 걸어간다.
인터넷 서핑으로 희열에 잠기는 때가 있다. 이것 봐라. 어떤 대목에서 멈춰 부랴부랴 자료를 뒤진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곡. 국내 미발표 곡이어서 감감하던 음악이 올라와 있다. 청계천 뒷골목 빽판을 뒤지다가 백열등에 비춰보며 환호하던 때가 떠오른다. 한때 마음을 사로잡던 곡들이 나처럼 추억을 가진 매니아에 의해 곧잘 오른다. 이도 옛날을 되살리는 하나의 기쁨이자 열정이었는데 어느새 자본논리로 재무장한 손들이 하나씩 볼륨을 지우고 있다. 음악을 듣던 귀가 막혀 우울해지는 것이 나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