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남자로 살아 남는 법

*garden 2009. 11. 26. 13:43




볼일로 역에 나갔다가 여기저기 주저앉은 노숙자들과 맞닥뜨린다. 측은도 하지. 남의 일 같지 않아 우두커니 눈길을 준다. 텁수룩한 차림새와 꾀죄죄한 몰골, 퀭한 눈과 의욕 잃은 몸짓 들을 어이 할까. 천덕꾸러기가 산재한 세상.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그래도 살아 있기에 살아갈 뿐인 삶. 다들 눈쌀을 찌푸리며 피해 다녀야만 한다.
경기가 좋지 않아 이십여 년 끌어오던 사업체를 접은 친구. 그 동안 쏟아붓기만 했지, 챙기고 쌓아 놓은 게 있을라구. 할만한 일을 장만해 두었느냐고 물으니 금세 말꼬리를 흐린다. 글쎄. 주변을 돌아볼 틈 없이 그저 주어진 일에 매진하느라 허우적거린 세월. 비로소 허리를 펴고 서지만 어질어질하다. 이쪽저쪽을 아무리 더듬어도 후회되고 난감한 일 뿐이니.
이번 주말 강남쪽에 예식이 한건 있더만. 몇이 모여 근황이나 알아볼까.
그렇다고 뭔 수가 있을라구.


피로연과 동시에 진행되는 예식.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누가 어디에 앉았는지 알 수 없이 북적대는 와중에 도모할 게 있어야지. 이재훈이나 김동률, 이소은의 감미로운 음성으로 들었음직한 결혼축가들. 축가를 부르는 신부 친구들 드레스가 과감해 시선을 받는다. 셋이서 한 소절씩 소화하다가는 합창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허리를 슬쩍 비꼬아 다시금 하객들의 찬탄을 받았다. 이는 신랑신부의 친구들에게나 한한 이야기이지. 혼주나 그 또래 어른들이야 낯 뜨겁고 목덜미가 화끈하여 편한 표정을 짓지 못한다. 들뜬 분위기나 진행은 이미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 마땅히 축하받아야 할 좋은 자리. 흥을 돋우는 게 마땅하다. 화답하듯 어우리지는 미성들이 Boss 스피커로 재생된다. 예식이 끝나고서야 몇몇 친구들과 모였는데 꺼내는 게 결국은 넉두리이다.
딱딱한 문구로 새긴 청첩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따로 새겨 돌리더니. 그렇게 담배를 피지 말라고 일러도 들은 척 만 척, 뒤란에 숨어 손으로 가린 채 뻐끔거리던 녀석이 어느 날 금연을 선언한다. 연유를 알아본 즉,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와 약속을 했다나. 제 애비보다 여자친구 말이 더 구속력이 있는가 싶어 노염을 담다가 포기한다. 이제 와서 어떡하나. 혀를 차면서 누그러뜨린다. 내색 말아야지. 제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더러 눈치를 보지만 정작 필요한 부분은 말없이 처리해 버린다. 집 안에 들어앉은 다음 느끼는 은근한 따돌림을 토로하며 이것저것 캐낼라치면 손사래부터 내두른다. 사소한 일이라는데. 정작 내가 놓치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선 제꺼덕 달려와 핏대를 올리더라니. 그러고 보면 많이 변했다. 어느새 내 안은 나약함으로 채워지고 아내는 반대로 거칠고 강해져 있다. 호랑이라던 내가 힘을 못쓰는 대신 마누라 목소리는 어디서나 왜 그리 크게 울리는지. 분을 못참아 작정하고 따질라들면, 허점 많고 말과 행동이 다른 나의 요모조모만 늘어놓는 통에 얼굴만 붉히고 만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 동비증을 앓는건가. 아버지 생전에 나 자신조차도 당신께 일말의 존경심을 진심으로 표현한 적 있었던가. 쉬운 말로 잘되면 내탓, 못되면 당신탓으로 치부한 적을 손가락에 꼽지 않더라도 수두룩하게 떠올릴 정도이다. 한줄기 냇물처럼 내달아 온 세월. 곳곳을 적시었으면 되었지, 뒤돌아보지 말자. 다시 생각해보면, 가족으로 이어진 연은 표현하지 않아도 나중 그만큼 채워질 때 저절로 알 수 있는 것.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지나고서야 새삼 꼼꼼하게 짚듯이 걔네도 나중 제 아이들을 건사하며 앞자리에 세우고서야 알게 되지 않을까. 가족이라는 것, 친구라는 게 그렇게 존재감만으로 가슴 울리는 일이라면 억지로 따질 것도 없다.
쌀쌀한 바람이 휘젓는 날에도 동네 할머니들은 공원에서 맞바람을 받으며 맴돌이를 했다. 살아온 날이 주절주절 흩어진다. 맞장구치고 토닥이면 요즘 신경통으로 절뚝임이 심한 복길이 할머니도 시름을 덜 수 있지 않을까.













Silent Stream * TaekSang.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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