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별을 보며

*garden 2009. 11. 23. 17:47




한며칠 영하권에서 맴돌던 기온. 단단히 여미고 차려 입었어도 춥다. 싸아한 기운이 숨쉴 때마다 폐를 자극하여 쿨럭거린다. 또한, 귀가 시렵더니 귓볼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새벽녘이라 더욱 견디기 어려운 건가. 정신이 얼얼할 정도이니.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보려다가 기우뚱한다. 눈을 감았다. 그리 밝게 느껴지지 않던 가로등 불빛이 눈을 찌른다. 가로등을 피해 이동해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 결국 한참을 걸어 비교적 장애물이 드문 벌판으로 나섰다. 푸썩푸썩한 흙을 밟으며 밭둑으로 올라선다. 눈을 껌벅거리자 차츰 동공이 커지며 하늘이 열린다. 익숙한 오리온자리를 건너 카시오페이아와 북극성과 작은곰자리. 주변에 명멸하는 아득한 곳의 이야기들. 쏟아질 듯 촘촘한 별들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갔다.


이렇게 별을 쳐다본 게 언제였던가. 어릴 적 시골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친인척과 동네 어른이 잔뜩 모였는데, 드물게도 늦게까지 대청에 술추렴이 이어지고 있다. 호롱불을 밝혔는데 이따금 왁자지껄한 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온다. 성가신 아이들은 냉큼 쫓겨나 마당 평상에 임시로 만든 잠자리에 머물렀다. 주워 들은 적 있는 옛날 이야기도 꺼내다가 그마저 동이 나 시들하다. 한낮 곤하게 뛰어다닌 바람에 몇몇 아이들은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진작 꿈나라를 헤맨다. 잠이 오지 않은 조무래기들만 뒤척이며 낄낄대다가 그제야 새로운 놀잇거리를 찾아냈다.
별이 차암 많네.
저 별은 밝아서 보석처럼 보여.
반짝반짝하는게 마치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아.
우와! 저기 별똥별이다.
어서 소원을 빌어.
별똥별이 다 타 없어지기 전에 소원을 빌면 들어준대.
정말?
우리는 하늘 구석구석에서 수 많은 별과 스스로를 태워 빛나며 스러지는 유성을 눈으로 쫓았다. 탄성과 놀라움으로 가득한 밤이었다. 어둠에 쌓인 밤이 무섭기만 한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늘이 혼란스러워 별이 제자리에 붙박히지 않은 옛날, 혜성이 마구 날아다녀 휘황한 별꼬리를 길게 늘일 적에 유성 하나가 황금사자의 모습으로 네메아Nemea 골짜기에 떨어졌다. 몸집이 크고 성격 또한 포악한 사자는 금세 사방을 휘저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침내 이 나라를 다스리던 에우리테우스Eurystheus 왕의 명을 받아 헤라클레스가 골짜기로 들어갔다. 사자는 대단했지만 제우스Zeus의 아들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나중 제우스가 아들의 승리를 길이 치하하기 위하여 사자를 별자리로 만들어 하늘에 올렸다고 한다.
사자자리는 계절에 따라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황도십이궁 중 하나로, 일등성 레굴루스를 품고 있다. 늦가을이면 밤하늘의 화성과 토성 사이에 있는 사자자리를 중심으로 유성우라고 부르는 별 잔치가 벌어진다. 이는 공전주기 삼십삼 년인 템펠 터틀 혜성이 남기고 간 우주 먼지 사이로 지구가 통과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사자자리 유성우를 보려고 나간 18일 새벽은 정말 추웠다. 하지만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고는 혼자 웃음 지었다. 이종사촌인 정주가 무섭다며 곁에 누워선 손을 꼭 잡았는데, 난 딴청을 부리며 눈으로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보랏빛 어둠을 뚫고 뛰어내리던 유성. 그 밤 떨어진 별똥별이 오히려 많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소원을 깡그리 들어 주려는 듯 여기저기 쉴새없이 떨어져 내리는 별.













Les Voyageurs * Rene Aub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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