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그대, 오늘은 안녕한가

*garden 2009. 11. 13. 11:56




나무꾼은 심호흡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다. 사슴의 얘기를 들으며 설마한 게 사실일 줄이야. 삐죽삐죽한 산정 위로 보름달이 훌쩍 솟아 있었다. 교교한 달빛이 산의 속살을 뒤지는 중에 바위 아래 자리한 웅숭깊은 옥담, 그 안에서 빙기옥골의 나신들이 까르르 소리를 내며 저마다 물장난을 치고 있는게 아닌가.
연못 바로 위까지 살금살금 다다른 나무꾼은 마침내 벗어 놓은 선녀의 옷 하나를 감춘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나무꾼과 선녀, 혹은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에로틱한 부분을 삭제하고 살을 붙여 뒷이야기를 이어보자.
무꾸리할 여념 없는 선녀는 별수없이 나무꾼을 따라 갔다. 산골아낙네로 변신하여 지아비의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고 밭쟁이는 아니더라도 밭골을 예사로 뒤지는 일면 산고까지 두어 번 치른다.
그렇게 알콩달콩 살았으면 좋은데, 어느 때 계절맞이 바느질감을 잡고 있던 중 바늘에 손가락을 찔렸다. 무심코 '아얏' 소리 내며 핏방울 맺힌 손가락을 입에 물고 눈을 감는다. 그 순간 떠나온 고향의 모습과 잊고 있던 식구, 친구 들을 문득 떠올렸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가 지금 무엇하고 있는가, 왜 여기 있는가? 자문하다 보니 삶이란게 참 보잘것없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속도 모르는 나무꾼은 밖에서 술이라도 한잔 걸친 날이면 이불을 더듬어 가운데 누인 아이를 타넘고서는 다가온다. 아이라도 하나 더 낳자고 사정하는데, 흥! 콧웃음을 낸다. 이전과 달리 가슴에 불덩이가 들었다. 부아가 치밀지만 내색할 수는 없다. 고향을 그리자 하루이틀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아궁잇불에 마른 가지를 밀어 넣다가도 눈물을 찍어내게 되었다.


나무꾼처럼 어리숙하게 옷을 내주고 말고를 따질 것 없이 아내는 날마다 치장하고는 떠나갔다. 연예인이나 모델이 아니어도 집 안은 온통 아내의 옷과 구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예전처럼 한두 벌의 옷만으로 줄곧 버티지도 않으며, 그 때처럼 감이 조악하지도 않아 옷 솔기가 터지거나 해어트려질 리도 만무하다. 단지 유행이 지나 입을 수 없다는 것뿐. 그럴 때면 아내는 한보따리씩 입던 옷을 싸서 아래에 내려놓는다. 덕분에 아이들도 입기 싫은 옷들을 슬쩍 끼워 내리고는 새 옷을 사 달라고 졸랐다. 이런 일은 집안 내부적인 거라 굳이 내가 집적대면 안되는 사안이었다.
기온이 어제같지 않아 갈아입을 옷을 뒤지는데 있어야지. 장롱과 옷을 챙겨 둔 서랍 안을 온통 어질러 놓고서도 작년 이맘때 입은 옷을 찾을 길 없다. 지난 계절을 앞두고서도 그렇더니. 세탁소에서 찾아오지 않았던가 싶어 아이를 보내 알아봐도 없기는 마찬가지. 단벌 고수는 아니어도 마음에 들라치면 정해진 옷만 늘상 걸치는지라, 시대에 뒤진 낡은 옷으로 견디는 게 보기 싫었는지, 아니면 나를 어느새 관심 밖에 두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러저러한 옷에 대해 물으려고 기웃거리다가 통화를 그치지 않는 아내를 무심히 보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출근을 위해 나서려는 것으로 오해했는지 손짓으로만 다녀오라는 시늉을 한다. 서운하게 받아들이자 서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날개옷을 진작 되돌려주지 않아도 해어화처럼 차리고서는 매일 떠나기만 하는 아내를 어떻게 잡으랴.













Castle Of Dreams * Giovanni Marradi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을 보며   (0) 2009.11.23
달콤한 꿈  (0) 2009.11.17
또 다른 걸음   (0) 2009.11.06
마음 가듯  (0) 2009.10.30
가을 맴돌이  (0) 2009.10.20